우리야말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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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변화’ 댓글 0건 조회 799회 작성일 08-06-10 17:45본문
촛불 집회가 만든 두 가지 의미심장한 정치 현상이 있다. 첫째는 레임덕을 연상할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상실 현상이 때 이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언론을 포함한 제도정치가 철저히 마비된 것이다.
“당선되면 돌변하냐? 경제는 쪽박” 한 젊은이가 든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40대 남자는 “그래서 A/S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지지자들마저 이렇게 실망하고 등을 돌린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9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가운데 불과 28.8%만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대통령이 현재의 방식을 고집하면 과거의 인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민들은 이제 그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었다.
촛불 집회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그의 사고방식과 이념, 성격이 서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것임을 강부자·고소영 인사에 이어 다시 절감하고 있다. 국민을 무시한 저자세 쇠고기 협상이나 이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잇단 발언들이 결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정권의 이념적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고 있다.
‘식물인간’이 된 제도정치
‘촛불 집회의 배후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라는 말이 우스개소리만은 아니다. 쇠고기 협상 직후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다”라고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또와네뜨 같은 소리를 한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이었다.
사태가 크게 번지자 사과를 한다면서 국민의 우려를 ‘광우병 괴담’이라고 말한 것도 그였다. 한총련 학생들이 가담하고 있어 걱정이라고도 했다. “교만하지 않았는지 저부터 돌아보겠다”더니 “그때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을 것”이라며 앞 정권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의 측근이 기도회에서 촛불 시위자들을 ‘사탄의 무리’라 비유하고 같은 자리에서 한 목사가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빨갱이를 잡아들이라”는 막말을 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이념이 현 정권의 상층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가 완전히 식물인간이 된 상태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도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한달이 넘게 난타를 당했는데도 야당의 지지율은 제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방선거 결과는 이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였지 야당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상 정당 행세를 해 온 거대 보수신문이 요즘처럼 구석에 몰린 적도 없을 것이다. 97년과 2002년 대선 때 여론몰이에 실패해서 체면을 구겼다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5년 대결에서 이겨 겨우 다시 찾았던 권위를 최근 한달 동안에 날려버렸다. 가뜩이나 독자의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판에 편향적 보도로 신뢰마저 잃었으니 그 후유증은 크고 오래 갈 것이다.
제도정치, 제도적 권위는 하나같이 마비되고 증발되었다. 잘못된 권력을 향한 민의의 폭발은 정당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거리의 정치,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정치, 대의 민주주의를 영구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권위의 추락은 결국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 해결책은 ‘변화’에 있다. 대통령, 제도정치, 보수언론 등 모두가 변해야 한다. 그것도 획기적 변화여야 한다.
대통령이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국민은 이 대통령이 자신을 ‘진보’로 착각하게 만들만큼 변화를 원하고 있다. 기대하긴 어렵지만 이 대통령이 용기 있게 과거 자신의 성공신화를 버리고 시대 요구에 맞게 인식 전환을 하는 것만이 나라가 살고 그 자신이 사는 길이다.
성공신화에서 벗어나라
오바마는 바로 그런 변화를 부르짖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우리 사회야말로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 오바마는 말했다.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수성가하라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같이 아파하고 그들의 아픔을 같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꼭 이 대통령을 위해 마련한 충고인 것 같다.
“당선되면 돌변하냐? 경제는 쪽박” 한 젊은이가 든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40대 남자는 “그래서 A/S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지지자들마저 이렇게 실망하고 등을 돌린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9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가운데 불과 28.8%만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대통령이 현재의 방식을 고집하면 과거의 인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민들은 이제 그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었다.
촛불 집회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그의 사고방식과 이념, 성격이 서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것임을 강부자·고소영 인사에 이어 다시 절감하고 있다. 국민을 무시한 저자세 쇠고기 협상이나 이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잇단 발언들이 결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정권의 이념적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고 있다.
‘식물인간’이 된 제도정치
‘촛불 집회의 배후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라는 말이 우스개소리만은 아니다. 쇠고기 협상 직후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다”라고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또와네뜨 같은 소리를 한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이었다.
사태가 크게 번지자 사과를 한다면서 국민의 우려를 ‘광우병 괴담’이라고 말한 것도 그였다. 한총련 학생들이 가담하고 있어 걱정이라고도 했다. “교만하지 않았는지 저부터 돌아보겠다”더니 “그때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을 것”이라며 앞 정권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의 측근이 기도회에서 촛불 시위자들을 ‘사탄의 무리’라 비유하고 같은 자리에서 한 목사가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빨갱이를 잡아들이라”는 막말을 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이념이 현 정권의 상층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가 완전히 식물인간이 된 상태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도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한달이 넘게 난타를 당했는데도 야당의 지지율은 제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방선거 결과는 이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였지 야당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상 정당 행세를 해 온 거대 보수신문이 요즘처럼 구석에 몰린 적도 없을 것이다. 97년과 2002년 대선 때 여론몰이에 실패해서 체면을 구겼다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5년 대결에서 이겨 겨우 다시 찾았던 권위를 최근 한달 동안에 날려버렸다. 가뜩이나 독자의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판에 편향적 보도로 신뢰마저 잃었으니 그 후유증은 크고 오래 갈 것이다.
제도정치, 제도적 권위는 하나같이 마비되고 증발되었다. 잘못된 권력을 향한 민의의 폭발은 정당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거리의 정치,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정치, 대의 민주주의를 영구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권위의 추락은 결국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 해결책은 ‘변화’에 있다. 대통령, 제도정치, 보수언론 등 모두가 변해야 한다. 그것도 획기적 변화여야 한다.
대통령이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국민은 이 대통령이 자신을 ‘진보’로 착각하게 만들만큼 변화를 원하고 있다. 기대하긴 어렵지만 이 대통령이 용기 있게 과거 자신의 성공신화를 버리고 시대 요구에 맞게 인식 전환을 하는 것만이 나라가 살고 그 자신이 사는 길이다.
성공신화에서 벗어나라
오바마는 바로 그런 변화를 부르짖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우리 사회야말로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 오바마는 말했다.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수성가하라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같이 아파하고 그들의 아픔을 같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꼭 이 대통령을 위해 마련한 충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