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인사 혁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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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정 댓글 0건 조회 700회 작성일 08-06-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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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오늘날의 공무원 제도는 근대 유럽국가의 관료제를 근간으로 한다.

근대 국가는 국왕이나 봉건 영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정치적 공동체로, 국민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보장했다. 따라서 국방.치안 등 경제 활동과 관계없는 공적 활동은 관료라는 전문가 집단에게 맡겼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사회가 복잡해지며 교육.복지 등 관료 조직이 맡아야 할 부문도 급격히 커져 조직 자체도 비대해졌다.

직업공무원제가 정착된 것은 미국에서 실적주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공무원 신분을 보장한 1870년대 이후다. 직업공무원제 이전에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많은 공무원이 일시에 교체되는 게 관행이었다. 정권 교체 때마다 국정 혼란이 초래됐고, 코드 인사로 빚어진 공무원의 신분 불안은 심각한 문제를 불렀다.

1881년 9월엔 미국 20대 가필드 대통령(1831~81)이 공무원 임용에 불만을 품은 사람에게 암살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뒤 유능한 공무원을 공개 경쟁으로 선발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신분과 지위를 보장하는 직업공무원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관료들이 경험을 쌓으면 고도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알게 된다"며 공무원의 신분 보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분이 보장돼야 업무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과단성 있는 정책 집행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공무원 신분 보장 제도가 행정편의주의와 무사안일을 가져온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관존민비 사상과 결합해 권위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경쟁 원리가 도입된 사기업과 달리 자기 계발에 게으르고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공직 사회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퇴출제도는 공직사회 혁신 방안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공직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공무원 퇴출보다 관료제를 개선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시민이 공무원을 감시하는 시민 참여제도 같은 것들이다.

한상일 교수(연세대.행정학)



◆생각 플러스:관료제와 직업공무원제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보고, 공무원 퇴출제도가 추진되는 이유를 밝혀라.

철학

공무원 사회가 '철밥통'이라면 깨져야 마땅하다. 오늘날 경쟁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울산시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를 시작으로 확산되고 있는 무능 공무원 퇴출 운동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무원 조직이 성립된 근대 사회의 원칙은 공개성이다. 근대화의 정도는 비판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과 전문화된 관료제도가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언론은 국가의 모든 정책이 투명하게 입안되고 논의되는지 감시하고 공개해야 하며, 관료 기구들은 정책 결정 과정과 논의 과정을 일반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근대화의 정도가 떨어질수록 중요한 결정이 밀실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료 조직은 물론이고 재벌이나 작은 단체도 정책 결정 과정을 감추고 결과만 통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태에서 퇴출제가 도입되면 상당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퇴출의 기준과 절차가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3% 기준의 기계적 적용 때문에 해당 부서에서 제비 뽑기가 행해졌다는 보도가 단적인 예다.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경쟁 원리가 작동할 리 없다. 오히려 고질적인 줄서기와 눈치 보기가 만연할 가능성이 크다. 하위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퇴출제는 관료제의 부정적인 면만 키울 수도 있다. 따라서 직업공무원제의 안정성이 흔들리며 소신과 창의성을 갖고 일하는 현장 공무원의 입지도 좁아질 것이다. 선거로 뽑힌 구청장이나 시장이 자기 사람만 챙기고 반대편에게 보복하는 인사 전횡이 제도화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졸속으로 도입된 퇴출제가 관료제 안에서 취약한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상하위 공무원 간의 민주적 의사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퇴출제의 원래 취지는 게으르고 무사안일한 공무원 조직을 일신하자는 데 있다. 이를 살리려면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퇴출제가 정말 필요하다면 고위 공무원부터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관료제의 단점을 시정하는 근본적 처방은 퇴출제가 아니라 비판적 소통의 언로를 활짝 열어 공무원 사회 본연의 공개성과 공정성의 원리를 충실히 살리는 데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