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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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초 댓글 0건 조회 1,061회 작성일 09-01-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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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2004년 초 등장한 ‘탈레반 투서’다. 청와대에 접수된 이 투서는 당시 외교부의 엘리트였던 조현동 북미3과장이 연말 회식 자리에서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 과장이 “미국을 모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외교를 망친다. NSC 젊은 보좌관들은 탈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투서 한 장의 힘은 엄청났다. 조 과장은 청와대 조사를 받은 뒤 보직해임됐고, 당시 윤영관 외교부 장관도 부하의 ‘항명’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됐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을 준비하던 2003년 초에도 외교부 장관으로 거론되던 A씨와 관련해 투서 한 장이 대통령직인수위로 날아들었다. “A씨가 이슬람교도여서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외교 장관으론 부적절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투서가 통했는지 A씨는 노 당선인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장관이 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때 외무장관 B씨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배경에도 투서가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B씨는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안 좋다”며 장관직을 던졌다. 하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당시 “특정 학교의 인맥을 외무부에 심고 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복무했다” 등의 루머들을 담은 괴문서가 돌아다녔다. 이 때문에 그의 사퇴를 놓고 관가에는 “개각을 앞두고 각종 투서 때문에 시끄러워질 듯하자 미리 사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B씨에 대한 괴문서가 투서 형태로 돌기 시작한 건 개각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투서 한 장으로 흥하고 망한 이들의 인생도 결국 새옹지마(塞翁之馬)다. ‘탈레반 투서’ 사건으로 지난 정부 내내 주인도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조현동 전 북미과장은 새 정부 들어 현재 청와대 행정관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