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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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절약의 역설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09-02-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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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수출이 사상 최대 폭(-32.8%)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도, 민간연구기관도 이 정도로 얼어붙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수출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63.5%에 달하는 우리 경제는 중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관들은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4% 내외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에만 기대온 우리 경제가 살아날 길은 내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출과 함께 내수도 완전히 얼어붙었다.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진흥원 조사에 의하면 영세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경기동향지수(BSI)가 1년 새 79.3에서 38.7로 40.6포인트나 급락, 사상 최악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업종이 부동산중개업, 택시업, 소매업, 음식점, 카센터 등으로 ‘개점휴업’이 속출하고 있다.

중산층 이상의 여유 계층에서 쓸 돈은 써주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외식도 하고, 대형마트에서 이것저것 물건도 사야 한다. 주말에 가족 나들이도 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순대에 어묵꼬치라도 사먹어야 영세 자영업자들이 살아간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회사 회식도 해야 인근 식당도 먹고살고 대리운전자, 택시운전자도 먹고산다. 부유층의 과시성 소비도 그리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부유층이 자동차와 휴대폰도 바꾸고, 고급 술집에도 가고, 골프도 치고, 백화점에서 명품도 사야 한다. 부유층이 소비를 늘리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난다.

내수를 늘리기 위해 정부는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내수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주문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소비여력이 있는 부유층이나 중산층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내구재 소비세 감면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앞장서 ‘소비가 미덕’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는 오스트레일리아나 타이완처럼 물건 구입을 위한 상품권이나 쿠폰을 나눠줘 소비양극화도 해소하고 복지 차원의 사회안전망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내수부양 액션 플랜은 뜨뜻미지근하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알뜰한 소비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는다. 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참모들이나 회의 참석자들에게 ‘내복 입고 다니기’, ‘불필요한 전등 끄기’, ‘공직자 골프 금지’, ‘주말 차량 과다’ 등을 강조하다 보니 중산층과 부유층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근검절약하니 공무원들은 자연히 따를 수밖에 없고, 소비능력이 있는 부유층과 중산층은 정부 눈치 보느라, 서민층은 쓸 돈이 없어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경제침체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좋으나, 자칫 지나친 절약이 오히려 소비감소로 이어져 경기위축을 심화시킨다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절약의 역설’이 우려된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소비를 줄이다 보니 부자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을 사고도 허름한 비닐 백에 담아 나오거나 배달을 시킨 뒤 빈손으로 나서는, 이른바 명품 소비 티를 내지 않는 ‘스텔스(stealthy)’ 소비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회장은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다른 나라의 저축을 수입해 과잉소비를 했던 미국은 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의 경우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시장, 즉 내수에서 새로운 동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말 나들이와 함께 외식으로 가족들한테 점수도 따고, 나라경제 살리기에도 동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