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억 삼킨 구청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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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6억 댓글 2건 조회 1,563회 작성일 09-02-2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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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억 삼킨 구청직원
기사입력 2009-02-21 00:39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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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사회부 차장대우
26억여원을 가로챈 구청 직원이 서울시 간부들에게 때아닌 새벽밥을 먹게 했다. 지난 18일 오전 7시에 열린 서울시 긴급 간부회의는 오세훈 서울시장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실상 모임을 소집한 장본인은 장애인 보조금 수당을 과대 계상하는 수법으로 26억4400만원을 빼돌린 양천구청 직원 안모(38)씨인 셈이었다. 한 회의 참석자는 "작년 전국 광역 시·도 청렴도 조사 1위를 한 서울시 식구로서 (관리부실에 대해) 심한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그 당시 오 시장은 청렴도 결과를 발표하면서 "'복마전(伏魔殿)' 오명을 듣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취임 후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고 꿈만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양천구청에서는 안씨의 행실이 알려진 며칠 전부터 직원들의 철저한 자기검열과 회계책임을 강조하는 '훈육(訓育)' 형식의 회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직원들은 "워낙 과묵·성실했던 직원이라 믿기지 않는다" "동료가 26억원 해먹을 동안 너는 뭐하고 있었냐는 조롱 섞인 안부 전화를 몇몇 친지로부터 들었다"고도 했다.

그보다 하루 앞선 17일 저녁, 서울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례적인 '저녁 기자회견'은 40분 전에야 부랴부랴 통보됐다. "8급 기능직 공무원이, 그것도 어려운 이를 돕는 복지분야 담당직원이 3년 넘게 72차례나 안 들킨 채, 무려 26억원을 빼돌려 집 사고 벤츠 타고 카지노 다니면서, 로또 2등 당첨된 아내 덕이란 핑계로 아무 의심 없이 지냈다"는, 저급한 흥행 요인들을 고루 갖춘 내용이었다. "구청에서 모두 점검한 것으로 알고 별도 확인 없이 지급했다" "부하직원을 믿고 청구한 총액만 결제했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말미에 서울시는 "지난달 부산에서 적발된 공무원의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횡령 사건을 계기로 시장이 각 자치구에 긴급 점검을 지시하는 바람에 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도 했다.

시와 구에서 나온 감사 관련 간부들의 해명을 들으며 기자들은 질문을 계속했지만 께름칙한 느낌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매주 적어도 2~3차례 설명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기자 브리핑룸에 그날 같은 '불편한 긴장감'은 드문 일이었는데, 긴급점검으로 금방 탄로날 일이었다면 왜 그동안 묻혀있었는지, 지시가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 일인지, 초등학생도 납득 못할 설명이었다.

양천구는 "액수를 부풀려 시비(市費)를 받은 것이어서 수혜대상인 주민 피해는 전혀 없었다. 16억원은 이미 받았고 5억원은 회수 가능하며 나머지 5억원은 변상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자치구에 나눠주는 복지 보조금 1조1800억원에 대해 전수 조사를 열흘에 마치겠다"는 대책을 18일 내놓았다. 그러나 구민과 시민들이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 의문이었다.

'청렴선언'이나 '비리 공무원 (시민) 신고포상제'가 서울시나 일부 구에서 아직껏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무슨 소용일까 싶다. 안씨 횡령 건이 제도적 허점을 확인해준 것이라면, 또 다른 '안씨'는 언제건 어디서건 암약할 것이고, 선량한 시민들이 그가 농간한 혈세를 메워야 할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사건이 양천구가 청장 명의의 보도자료에 썼듯 '자기반성' '분골쇄신'을 실천할 충분한 계기가 될지, 서울시에겐 지난 두 달간 빠져있던 '청렴도 1위'의 취기를 깨우는 각성제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