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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원에 이어 전남 해남에서도 복지 담당 공무원이 취약계층에게 지급해야 할 보조금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해남군의 7급공무원이 저지른 사건인데 그 담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공무원이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횡령한 복지예산이 자그마치 10억 원이다. 한 마디로 고양이에 생선을 맡겨놓은 셈이다. 앞서 서울 양천구청과 강원 춘천시청에서도 공무원이 장애인과 저소득층·노인 등에게 지급해야 할 예산 수십억 원을 착복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유사사건들이 전국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이 예산을 빼돌린 수법도 거의 비슷하다. 가족·친지 명의로 차명계좌 수십개를 만들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등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예산을 마치 월급 받듯 챙겨온 것. 그 돈으로 빚 갚고, 차 사고, 해외여행도 다니는 등 사적인 용도로 흥청망청 사용한 사실도 닮았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이처럼 장기간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동료직원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는 다시 말해 현행 복지예산 집행 시스템 전반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다른 지자체라 해서 사정이 다를 리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어느 자치단체에서 복지 예산이 줄줄 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복지예산이 이처럼 옆으로 새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돈을 내려보내는 중앙정부와 실제 예산을 집행하는 자치단체 사이의 소통부재가 우선 지적된다. 복지 지원금의 항목은 무수히 많은데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감시할 시스템도 없다. 무엇보다 업무량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담당 공무원이 턱 없이 부족한 점은 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무원 개인의 ‘도적적 해이’로만 그 탓을 돌리기엔 사안이 너무도 엄중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기회에 복지예산 집행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거의 드러난 만큼 이제는 그 곪은 곳을 도려내는 수술이 필요하다.
수혜대상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 보조금 지급 경로의 투명성 확보 및 사후 검증 시스템 등이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하겠다. 그에 앞서 각 지자체의 복지예산 지급 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해 옆으로 샌 돈을 찾아 거둬들이는 일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