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내는 사람과 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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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불 댓글 0건 조회 888회 작성일 09-04-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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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 토머스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왜 하필이면 생명이 약동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봄은 얼어붙은 땅에서 생명을 탄생시키지만 그것은 또다른 고통의 시작일 뿐이니 잔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바로 이 땅의 초목들이 그런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매일같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산불로 막 생명의 싹을 틔운 나무들이 무참하게 불에 타 숯덩이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4월이 되면서 산불이 더욱 빈발하고 있다. 특히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장기간 계속되고 바람도 거세지면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요즘 하루평균 20여건의 산불로 수만 그루의 나무가 이 찬란한 봄에 불에 타 생명을 끝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산림은 불모지로 변해 몇 년이 지나더라도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다.
 
 지난 2000년 4월 2만4000㏊의 피해를 본 동해안의 산불 피해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불은 또한 산림공무원에게도 ‘잔인한 4월’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산불방지 특별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전국의 산림공무원들은 24시간 산불 예방과 진화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이들에게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는 한낱 사치일 뿐이다. 산림청의 헬기 조종사도 마찬가지다. 헬기 조종의 피로감은 차량 운전보다 4배나 높다고 한다.
 
 그러나 연일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산불로 이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비행하며 산불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더욱이 우거진 산림은 헬기가 아니면 끌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산불을 내는 것일까. 악의적인 방화범도 있지만, 대다수는 논·밭두렁을 태우거나 쓰레기를 태우거나, 또는 담뱃불을 끄지 않고 버린 선량한 사람들이다.
 
산림청이 최근 지난 5년간 검거된 산불실화자 612명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산불 원인자의 78%가 그 고장 사람이고, 76%가 60세 이상 노인이며, 64%가 논·밭두렁이나 쓰레기를 태우다가 산불로 비화했다. 결국 산불의 원인은 무심한 행동, 사소한 부주의다.
 
 산림 인근에서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태우다가 산불로 번진 것이다.
 
지난 5년간 28명의 산불실화자가 산불을 끄다가 사망했는데, 올해에도 벌써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법무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등 3부 장관이 10일 산불 방지에 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방화자는 최고 7년 이상의 징역, 실화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등 강력한 단속처벌 의지를 밝히면서 국민에게 세 가지를 지켜줄 것을 특별히 당부했다.
 
첫째는 입산통제 구역에 들어가지 말 것,
둘째는 산림 안에서 불씨를 다루지 말 것,
셋째는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소각을 금해 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지킬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이다.

산불을 내는 사람과 끄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실수로 산불을 내는 사람도 마을 뒷산에 산불이 나면 끄기 위해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산림이 바짝 말라 있다. 얼마나 메말랐는지 전남 영광의 월출산에서는 30~40년생 소나무 67그루가 수분 부족으로 집단 고사했다.
 
이렇게 건조한 때, 특히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산림 인근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것은 바로 산에 불을 지르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년간 땀과 노력으로 가꿔온 우리의 산림, 세계로부터 유일한 성공 사례라고 칭송받는 산림이 산불로부터 지켜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산불 예방에 적극 나서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