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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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공정 게임 댓글 0건 조회 795회 작성일 09-04-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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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아버지는? TV 유명 프로그램의 퀴즈다. 출연자는 인기 개그맨, 가수다.
 
정답을 맞히면 방에서 자고, 못 맞히면 마당에서 이슬맞으며 자야 한다. 출연자들은 답변한다. 태종 이황, 태조 이방일, 문단세(문종, 단종, 세조)…. 엉뚱한 답변들이 쏟아진다.
 
 퀴즈는 계속된다. 이집트의 수도는 피라미드, 삼장법사의 최종 목적지는 해인사.
 
시청자들은 유명 연예인들이 단순한 역사, 지리문제를 풀지 못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배꼽을 쥔다. 한편으로는 환호한다. 그들의 인기는 더욱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은 TV 속에서의 일이다.

현실 세계라면, 특히 학교에서라면 그들은 무시되고 경멸받을 게 틀림없다. 개그 잘하고 유행가를 잘 부르는 학생은 오락시간에만 각광받을 뿐이다. 학교는 그런 재능을 평가하지 않는다.
 
 ‘공부 머리’처럼 개그나 유행가 실력도 대체로 타고 나는 것이지만 학교에서의 대접과 사회적 평가는 판이하다.
 
공부 실력과는 달리 개그나 유행가 실력은 대학입시의 전형요소가 아니며, 출신 대학은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부실력은 출세길을 보장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공부머리’ 모아 기숙형 대입교육

최근 들어 이런 관행에 다소 변화가 일고 있긴 하다. 타고난 공부머리가 아니더라도 공부 잘 하는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다. 공부머리가 그다지 안 좋아도 학원과 과외를 통해 성적 올리는 법을 배워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정확한 입시정보를 더 많이 얻고, 그만큼 더 많은 대입 기회를 보장받는다. 교육의 양극화다.
 
실제로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 합격생 가운데 해당 학교 진학을 대비하는 특정 학원 출신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목고·자립형사립고 진학의 ‘특정 통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통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은 소위 ‘명문고’ 진학을 꿈꾸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기숙형공립고나 자율형사립고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보일 게 틀림없다.
 
기숙형공립고 등을 수백개 설립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사실상의 고교입시 부활이나 사교육 조장, 평준화 해체 기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번 공개한 시·군·구별 수능성적은 이런 경향을 확인하고 있다. 성적이 뛰어난 일부 군지역의 고교는 전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뽑는 기숙형 학교였다.
 
수능성적 상위 20위 안에 든 한 학교 3학년생의 출신지역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외지 출신이었다.
 
 이들 학교의 수능성적이 왜 뛰어났는지에 대해 정밀한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전국의 머리좋은 학생들을 모아 ‘기숙’시키며 전문학원 못지않은 입시교육을 시킨 학교와, 시·군·구 지역의 학생들만 뽑은 데다 기숙도 시키지 않는 학교의 성적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입 성적 향상을 위한 해당 학교와 교사들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성적이 올라갔는지는 분석해 볼 일이다.
 
수능성적 공개 찬성론자들은 이들 학교를 내세워 학교간, 교사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학교는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없다. 불공정 게임의 승자가 보편적 모범사례가 된다면 그것은 평등의 원칙에 대한 배반이자 반교육적인 일이다.

또 학교나 교사의 분발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교육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사회는 이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수능성적이 안 좋은 학교와 교사를 마녀사냥하듯 몰아세운다고 해서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리 없다.

교육의 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나

고교 교육은 중견국민 육성을 위해 지성과 덕성, 체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지’에 관한 한 우리 고교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각종 국제 학력 올림피아드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외국 유수 대학 진학률도 상당히 높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학은 이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세계대학 평가에서 100위권에 드는 국내 대학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렇다면 답은 명백하다.
 
정부와 사회가 대학교육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연간 20조원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포함해 고교교육과 대입에 쏟는 비용과 자원과 노력을 대학교육 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