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식당 보고 좀 배우세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기업의 식당 댓글 4건 조회 2,994회 작성일 09-04-23 08:03

본문

맞벌이 가정 늘고 불황에 직원 기(氣) 살리고… 아침부터 사원식당 몰려

22일 오전 7시30분, 5년차 회사원 박재연(29)씨는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메인타워 3층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가방만 내려놓은 뒤 재빨리 지하 1층 사원식당으로 향했다. 서둘렀는데도 배식대에서 식당 문 밖까지 30m 넘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박씨는 5분간 줄을 서서 전주식 콩나물 국밥·두부조림·마늘종볶음·포기김치를 받은 다음, 직원들로 붐비는 276석짜리 식당을 한참 두리번거린 끝에 빈자리를 찾았다. 밥과 반찬을 깨끗이 비우고 숭늉까지 마신 박씨는 "지난해 8월까지는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고, 가끔 배가 너무 고프면 김밥이나 한 줄 사 먹는 정도였다"며 "9월에 새 사옥으로 이사오면서 사원식당에서 아침밥을 주니까 속도 든든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직원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급식업체 아워홈에 따르면, 이 업체가 위탁 운영하는 서울 시내 사원식당 170여 곳 가운데 110곳이 아침을 제공한다. 아워홈 관계자는 "올해 새로 계약한 기업들은 대부분 점심뿐 아니라 아침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22일 오전 7시30분 서울 신문로 금호 아시아나 메인타워 지하 1층 사원식당에서 이 회사 사원들이 아침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지난해 11월 서초동 삼성타운으로 옮긴 삼성전자도 사원식당에서 아침밥을 내고 있다. 과거 태평로 시절에는 인근 삼성공제조합 건물에서 아침밥을 줬지만, 골목길을 따라 500m나 걸어가야 하는 곳이라 이용자가 적었다.

삼성전자의 새 식당은 약 5000㎡(1500평) 넓이에 1200석 규모다. 2000~5000원에 한식·양식·분식·베이커리뷔페 등 4가지 식단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사원식당 영양사는 "외부 식당에선 5000~1만원쯤 할 음식"이라고 했다.

삼성타운에 근무하는 삼성전자 직원은 4000여 명이다. 사옥 이전 초기에는 직원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직원이 300여 명에 그쳤지만, 계속 늘어나 요즘은 700명이 넘는다.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회사에서 아침을 먹는 셈이다.

똑같이 삼성타운에 입주한 삼성 계열사라도 아침을 먹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회사가 있다. 삼성전자 옆 동에 있는 삼성물산은 삼성타운 근무자가 2000여명에 불과한데도 아침 먹는 사람은 700명이 넘는다. 주로 건설부문 직원들이다. 삼성물산 조근호(41) 차장은 "건설 현장에서 아침밥을 먹던 버릇이 있어 본사에 들어와도 꼭 아침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기업이 아침밥을 주는 것이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다. LG와 포스코는 1990년대 말부터 각각 여의도와 삼성동의 본사 사원식당에서 아침밥을 제공하고 있다. LG는 간단한 분식 메뉴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밥, 국, 반찬 4가지에 과일과 누룽지를 낸다. 외국인 직원을 위해 샐러드와 샌드위치도 준비한다.

포스코 식단도 비슷하다. 포스코의 경우 24시간 용광로가 돌아가고 당직 직원이 많다는 기업 특성상 아침밥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입소문 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다른 기업들도 하나 둘씩 아침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은 왜 사원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게 된 것일까? 한준(43)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맞벌이가 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아침을 주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남성을 위한 복지제도 같지만, 실제로는 출근 준비에 쫓기며 남편 밥을 차려야 하는 맞벌이 주부들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분석이다.

매일 회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대우건설 직원 이모(여·30)씨는 "출근 시간이 남편보다 일러 남편 아침을 챙겨놓고, 나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먹으려고 회사에 나와서 아침을 해결한다"며 "우리 회사보다 남편 회사에서 아침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하면, 아침밥은 사원들의 애사심을 높이기에 꽤 효과적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본관에서 직원 300여명에게 아침밥을 주는 비용으로 매달 2000만원쯤 쓴다. 1인당 들어가는 돈은 7만원이 채 안 되지만, 직원들의 만족도는 그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44) 소장은 "요즘 젊은 직원들은 '연봉이 얼마냐'보다 '회사가 나를 얼마나 아끼냐'를 따진다"며 "아침을 준다는 것은 회사가 사원을 아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아침을 주는 회사 직원 대부분은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포스코 이영섭(33) 대리는 "밥이 다가 아니라 다른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팀원들과 의사소통이 잘되는 효과가 있다"며 "점심, 저녁은 바깥 약속이 많으니까 회사 사람들끼리는 아침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출근 시간 앞당겨서 일을 더 많이 시키려고 아예 아침까지 먹인다는 생각에 울적할 때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