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도는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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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제 댓글 0건 조회 692회 작성일 09-05-0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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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도는 늘 어렵다. 잘 살고픈 욕망을 가진 수용자들이 꼼꼼히 보는 탓에 늘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보도된 다음 그 정확도나 영양가는 금방 판가름나는 탓에 언제나 날 선 평가에 노출된다.

또 한편으로 정보를 생산해내는 주체들의 옥석을 가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려운 내용을 수용자의 눈높이로 맞추는 일도 보통 노력을 경주해선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 저널리즘은 늘 비판의 대상이면서, 낮은 평가점수를 떨치고 쉽게 우등생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지진아 꼴을 못 면하고 있다.

경제 저널리즘이 받은 낮은 성적표는 '경제 논객' 미네르바의 날개 역할을 했다. 정부가 내놓은 경제 전망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했지만 경제 저널리즘도 그가 온라인을 주름잡게 한 또 다른 주역이었음을 부인키는 어렵다.

미네르바의 정체가 밝혀지자 경제 저널리즘은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학력이나, 간간이 보였던 부정확성 탓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사회에 회자되고, 그와 공권력이 싸움을 벌일 때 경제 저널리즘은 미네르바의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미네르바와 한 몸을 하고 있었다. 경제 저널리즘이 어둠을 헤맬 때 미네르바가 번득이지 않았던가.

경제 저널리즘을 행하는 편에서는 IMF 통치경제 시절에 가장 많은 반성을 했다고들 토로한다.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만큼은 과오가 있음을 깨끗이 인정한다. 어떤 언론인들은 경제 저널리스트들이 안아야 할 원죄를 그 때 저질렀다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늘 그 때를 기억하며 일신우일신할 준비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저널리즘에 대한 낮은 평가나 그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한 사회 문제의 야기는 한국의 경제 저널리즘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공황이 일어났던 1920년대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유행했던 '경제 기반이 튼튼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국인의 밥상을 풍요롭게 할 준비가 끝났다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비판 없이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이후로도 미국 경제 저널리즘이 받아 쥔 성적표는 여전하다. 경제에 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는 평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경제 저널리즘을 잘 수행하기 위한 제안들을 학계, 저널리즘계, 경제계 등에서 많이 쏟아냈다. 전문성을 높이고, 뉴스 소스에 대한 꼼꼼한 점검을 펴고, 통계숫자보다는 실물경제에 더 눈을 돌리고, 유능한 전문가를 찾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과거보다는 나아질 거라 전망했다.

어차피 경제 저널리즘이 경제학을 펴는 노력이 아니라면 그 정도 수준만 맞춘다면 무난할 거라는 전망이었다. 과거보다 비중이 높아진 경제 저널리즘을 한 수준 더 높이는 일은 불가피하고, 또 그에 맞춘 노력은 경주되어야 한다는 데 저널리즘계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다.

경제 저널리즘은 사회적 의제다. 다른 영역과 달리 대체로 대중은 경제에 관한 한 대부분의 정보 습득을 저널리즘에 기대고 있다. 집을 사는 일, 주식 투자. 사업 개시, 저축, 자녀 유학 등을 경제 저널리즘과 연관시키는 일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저널리즘의 문제는 앞서 제안된 개선책으로만 해결될 일은 아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보다는 한 단계 더 강한 뼈 깎는 전환은 불가피하다.

테크닉의 부족에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떨치는 일이 급선무다. 언론사 내부에서 아직도 경제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 채, 개별적인 보도에 더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 매체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경도되어 경제 저널리즘의 원칙들을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매체가 공존해야 할 마지막 파트너는 수용자임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점검해야 할 그 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면 또 다른 미네르바가 그 어둠을 타고 전보다 더 긴 비행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