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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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편과 ‘오빠’ 댓글 0건 조회 1,177회 작성일 09-05-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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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오빠 오빠’ 하다니. 아니, 이건 예사로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닌데….

몇년 전엔가 맨 처음 TV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 흥분했다.

“아유, 오락 프로에 나와서 하는 말 가지고 뭘 그러세요?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건데.”

나도 마음 한 구석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더구나 인기 연예인들이 일반 대중,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나 자신 크게 신경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또 그에 대한 우려를 깨끗이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언제부턴가 TV 드라마에서도 남편에게 ‘오빠 오빠’ 하는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드라마에서도? 방송작가의 책임이 얼마나 큰데….

곧장 그 작가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었으나, 그보다 내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에 떠밀려서 얼마 동안인가 잊고 지내다 보니, 이걸 어쩐다? TV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저기서도 심지어는 내 주변의 아주 가까운 친지들 가정에서조차 전혀 거리낌없이 예의 ‘오빠 오빠’ 하는 그 말이 빈번하게 들려오는 게 아닌가.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데…. 연애 기간까지야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혼해서 부부관계로 맺어지고 나서까지 그런다는 건 천륜에 어긋나는 언행이랄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들 60대 부모들이 미혼 시기였을 때만 해도, 남녀 간에 가깝게 지내며 사귀다가 남자 친구에게 ‘오빠’라고 부르게 되면 그건 상대방 구혼남에게 연인관계로 들어가거나, 결혼까진 하고 싶지 않다는 완곡한 거절 표시나 다름없었다. 마찬가지로 남자 쪽에서 “이젠 오빠라고 해”라고 하면 여자 역시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빗나간 큐피드의 화살. 상대방이 싫지는 않지만 왜 그런지 영 연애 감정이 생기질 않고 슬그머니 발뺌을 하고 싶을 때 흔히 써먹던 그 말. 그렇건만 아무리 변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거꾸로 변하고 있는 걸까.

잠시잠시 흥분과 개탄을 한껏 누그러뜨리며, 차가운 머리, 따뜻한 가슴이 되어 젊은 세대의 개성이랄지, 그 심리 상태를 헤아려 보려고 노력해 본다. 정말 왜 그럴까. 어떤 연유에서 결혼을 하고서까지 사랑하는 남성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하나의 추세, 풍조처럼 돼 가고 있는 걸까.

오빠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 오빠라는 존재가 사무치게 아쉬워서 그런가 보다 하기엔 여러 가지로 너무 아닌 거 같고, 근년에 이르러 점점 더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행, 성추행에 대한 두려움이 은연중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서일까. 은연중 그런 두려움에서 이 세상에 오빠처럼 믿을 만한 남자는 없기에, 알게 모르게 ‘보호받고 싶은’ 심리작용으로? 그리고 오빠 오빠 하며 응석 부리고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여성심리에서?

은연중 성폭행, 성추행에 대한 두려움은 그런 대로 쉽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 한두 자녀밖에 갖지 못한 부모들의 과잉 보호 속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그 역시 알게 모르게 의식의 밑바닥 깊숙이 잡게 된 ‘의존심의 발로’는, 남녀평등이 많이 현실화해 가고 여성 상위시대 운운까지 하는 현 시점에서의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는 여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를 극복하고자 스스로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정진, 노력하고 있는 진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믿지만.

남편에게도 오빠, 친정 오빠에게도 오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고 창피스럽다고 난감해하면서도, “요즘 애들 너도나도 다들 그 모양인데, 어쩌겠어요?
 
흉 보며 닮는다고 멀쩡한 애들까지도요. 애 낳고 키워가면서 저절로 깨우치게 되기만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그렇게 수수방관, 너무나도 쉽게 묵인해 버리는 부모 세대들에게도 책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데, 스무 살 버릇이 여든에 아흔까지 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기야 ‘오빠 오빠’ 하던 것이 아이 낳고 키우면서부터는 ‘아빠 아빠’ 하는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됨이 대부분일 거라고 얼핏 예상하기도 하지만(‘아빠 아빠’ 하는 말버릇도 실은 문제다. 친정아버지에게도 ‘아빠 아빠’, 남편에게도 ‘아빠 아빠’ 하니까), 은밀하면서도 가장 심각하다 할 문제는, 그 남편이나 그 아내의 ‘변심’에 있다.

그 남편도 그렇고, 그 아내도 그렇고, ‘오누이 같은 부부’는 언젠가는 그 한계에 부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결국에 가서는 오빠가 아니라 남편인 것이고, 아내 역시 결국에 가서는 여동생이 아니라 아내라는 얘기다.

‘오누이 같은 사이’에서는 가족적인 유대감·친근감이 보다 강화되고 돈독해질 수 있는 반면, 연인관계에서의 스킨십, 부부관계에서의 섹스십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이 생각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그 내면에 알게 모르게 불만감이 누적돼 가고, 자신을 진정 남자로 만들어주는 여자, 자신을 진정 여자로 만들어주는 남자를 찾고 싶은 원초적 본능에 이끌려 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가정이 파괴되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이를 수도 있고. 그러므로 너도나도 때를 놓치지 말고, 서로서로 일깨워주며 바로잡아야 할 건 가능한 한 제때 바로잡아야 한다. 연애 시절부터 너무 ‘오빠 오빠’ 하지 말고. 오래 길든 습관일수록, 갑자기 단 시일 내에 바로잡기는 힘들어지니까.

가정이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우리 모두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가고 지켜 가야만 할 가치가 충분한 곳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