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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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만 댓글 0건 조회 715회 작성일 09-06-0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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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달리 친구는 중매로 부잣집에 시집

신혼시절, 돈 많아도 불행한 모습 보며 "난 결혼 잘했다" 위안

아이들 생기자 역전… "좋은 옷·장난감 못해주니 마음 아파요"

결혼은 돈 보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요즘은 정말 그 말이 맞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제게는 친한 대학 동창이 있어요.
 
괄괄하고 명랑한 저와는 다르게 친구는 얌전하고 내성적입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좋아하는 책 작가 영화 음식까지 취향이 같아서 찰떡같이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됐어요. 다소 덜렁대고 주책 맞은 저에 비해 꼼꼼하고도 세심한 그 친구와는 도리어 잘 맞았어요.

저는 대학 2학년 때 복학한 선배와 사귀기 시작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저와 선배는 취직을 한 뒤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어요. 주변에서 좀 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만나보라는 말도 들었지만, 결혼이라는 게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은 듣지도 않았지요.

반면 졸업 후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했던 친구는 집에서 주선한 맞선 상대와 6개월 정도 교제를 하더니 덜컥 결혼을 해버리더군요. 7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이라서 저도 친구로서 반대를 했어요. 사귄 기간도 너무 짧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한다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어쨌든 친구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니 나중엔 잘 살기를 바랬죠.

친구의 결혼은 평탄치 않았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은 무뚝뚝한데다 일을 핑계로 친구를 많이 챙겨주지 못했어요. 친구는 맘에 안 들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이면서 많이 힘들어 했어요. 친구가 신세를 한탄하고 눈물을 보일 때마다 위로해 주면서 역시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 집이나 남편 집이나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간신히 15평짜리 전세를 마련해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친구는 시작부터 30평이 넘는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거든요. 아무래도 비교가 되니까 속으로 기죽고 그랬는데, 좋은 집에 살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친구를 볼 때면 저도 위로를 받곤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결혼생활을 힘들어 하면서 이혼까지 생각하던 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저도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서 우리는 병원도 같이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친구의 남편도 부쩍 자상해졌고 점점 상황이 좋아지더 라구요. 그 때부터였어요. 사랑만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게 정말 옳은 일인가 자꾸 반문하게 된 것이.

저도 아이를 낳고 일주일 정도 산후 조리원에 있었지만 비싼 가격을 감당 못해서 집에서 혼자 아이를 돌봤어요. 시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친정 엄마는 일이 바쁘셔서 저를 도와주실 수 없으셨거든요. 한 솥이나 끓인 미역국을 몇 날 며칠 먹으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친구는 한달 넘게 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시아버지로부터 "아이가 귀한 집에 손주를 낳아주어 고맙다"며 차를 선물 받았어요. 그 때도 부럽지는 않았는데 점점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 마음 속에 시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네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온갖 장난감에 아이를 위한 물건들이 가득하고, 듣도 보도 못한 영양제에, 유기농 식품들…. 아이에겐 부모의 애정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고 그 아이에게 해주는 만큼, 아니 그의 반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 지더라구요. 친구가 아이에게 입히는 옷은 모두 고가의 브랜드, 제가 아이에게 입히는 옷은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옷들…, 비교하기 싫어도 비교가 되더라구요.

빨리 자라는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입혀봤자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여유 있으면 좋은 거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바이올린을 해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장난감 바이올린을 사주는 저와, 진짜 바이올린을 사주고 레슨을 받게 해주는 친구….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서 저는 점점 친구와의 만남 횟수를 줄였어요. 파트타임 일자리도 구했어요. 정식으로 회사에 다니고 싶었지만 아이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다녀야 했거든요. 아이는 호흡기가 약해서 감기만 걸려도 금새 폐렴이나 기관지 염으로 발전을 하는 바람에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해도 저축을 하기 힘들었어요. 어른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아이에게 어른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남편과는 여전히 잘 지내지만 일과 육아에 지치면서 뭔가 벽이 생겨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고. 그 동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했지만 이번엔 달리 둘러댈 말도 없고 해서 만났어요. 자기한테 뭔가 화난 게 있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그런 거 없다고, 그냥 먹고 사는 게 바빠 그랬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제 모습에 저 자신이 놀랐어요.

친구는 내년쯤 아이와 함께 조기 유학을 갈까 알아보고 있다면서 가기 전에 자주 봤음 좋겠다고 하더군요. 제게 과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저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는지라 미워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말은 곱게 나오질 않았어요.

아직 어린데 무슨 유학이냐고, 요즘은 다들 너무 유학 유학해서 큰 일이라고…. 친구도 웃으면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편이 그렇게 하자고 한다면서 자기가 거기 가서 집을 구하면 집세는 안 받을 테니 너도 아이 데리고 함께 오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집세만 안 낸다고 유학이 가당키나 한가요? 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나는 우리나라에서 잘 가르치련다"라고 했어요. 능력이 되지만 생각이 있어서 안 하는 것과 부족한 능력때문에 애당초 상상할 수도 없어서 안 한다고 하는 건 차이가 크더군요. 아이한테 정말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들을 주고 싶은데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미안하기만 해요.

상대의 조건만 보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에게 최상의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점점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