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逆罪(대역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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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민 댓글 0건 조회 1,431회 작성일 06-09-08 20:3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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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노 대통령이 기어코 ‘미군 없는 자주국방’을 고집하려 한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한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요 예의다.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지키는 자위(自衛)의 정신이다. 그 다음은 주권을 해치지 않는 전제 아래 친구의 나라와 협력해서 서로를 지켜주는 공조(共助)의 정신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살아남는 안보의 논리이며 동맹의 경제학이다.
우리가 완전한 자주국방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미국의 존재에 어느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못 된다. 그러나 나라의 안보에 대한 확실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유지해온 공조체제를 버리고 ‘자주’만을 추구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모두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우리 국방의 현주소가 누구의 잘못과 어느 정권의 오판에 기인하는 것인지를 들추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우리가 과거의 미숙과 미비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은 오늘 똑같은 실수와 오판을 막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오판을 경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한 이완용(李完用) 등 고종의 대신들을 가리켜 ‘을사5적’이라고 지칭한다. 당시의 상황을 재검토한 연구들은 이들이 “대신들이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고종의 포괄적 지시가 있는 상황에서 대세를 거부하지 못하고 일본의 외교권 요구를 받아들이되 왕실과 내정자치를 보존하고 외교권 양보를 한시화하는 조건에 치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통탄해 마지 않는 것은 그들 대신들의 ‘오판’이 결과적으로 5백년 사직의 종말을 불러오는 시작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정치지도자의 ‘판단’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거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2003년부터 5년간 이 땅의 국가운영권을 위임받은 한시적 대통령이 자신의 어느 ‘판단’이 결과적으로 영원히 가야 할 나라의 기틀을 허물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지극히 겸손하고 신중하기를 바란다. 정책적 문제에 대한 판단도 그 결과에 따라 폐해가 심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문제는 폐해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런 엄혹한 현실 앞에서 대통령은 왜 굳이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지 그 ‘신념과 의지’의 근거를 묻고 있다. 자주가 어떻고 민족자존심이 어떻고 국군통수권이 어떻고 하는 말들은 듣기에 그럴 듯하다. 그러나 지금 남쪽을 삼키지 않고는 생존의 전망이 없는 호전적 김정일 정권이 바로 머리 위에 있고,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의 맹주를 꿈꾸는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싹들이 좌우에 널려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 어떤 달콤한 말들도, 어떤 그럴 듯한 포퓰리즘도 즐길 여유가 없다. 나라의 안보는 0.001%의 가능성에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긴박한 여건에서 ‘자주’의 멋을 한껏 부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 ‘사치’에 상응하는 ‘책임’, 즉 이 땅에 안보적 분란과 무력적 공갈이 횡행할 때 대역죄의 책임도 함께 진다는 것을 국민 앞에 분명히 천명하고 한·미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