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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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나·기 댓글 0건 조회 726회 작성일 09-07-04 12:41본문
올해는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활동을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십수 년 전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송사에 휘말려서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시민운동 꾼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생각해보면 인간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당한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책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을 출간했고, 책이 사회적으로 의외의 반향을 일으키는 바람에 모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한 것이 계기가 돼서 아·나·기라는 비정부기구(NGO) 단체가 탄생했다.
보통아줌마의 열등감이라고나 할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내 기사는 내가 얘기한 대로 쉽게 써 주세요. 과하게 포장하지 말구요” 했더니, 기자는 어이없다는 듯 “왜요” 하고 물었다. “신문기사가 어렵고 딱딱하니까 아줌마들이 신문을 잘 안 보잖아요. 그러니 내 기사만이라도 아줌마 수준에 맞게 써 주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기자는 계속 질문을 해댔다. 그 자리를 벗어나려면 아무 말이나 적당히 둘러대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줌마 반란부대나 만들어서 두목이나 할까요” 했더니, 기자는 재미있다는 듯 “반란부대요? 두목요?” 하면서 기자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고서야 나를 놓아 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기사는 내지 않고 아줌마 반란부대를 언제 만드느냐고 종주먹을 대면서 전화를 해오는 것이다. 몇 번의 전화 응대 끝에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1999년 9월2일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출판기념회를 하려고 하는데 일주일만 연기하고 생각해 볼게요”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1999년 9월9일 아줌마 반란부대 결성’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신문기사를 본 아줌마들의 열화와 같은 자발적 참여로 탄생하게 된 모임이 ‘아줌마반란부대’이고, 후에 단체명을 개칭해서 아·나·기가 됐다. 초기 반란부대 회원들 중 아직까지 나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은 일이 대책없이 벌어진 것이다. 대책없이 시작된 일이기에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아·나·기를 이끌어 가자니 어렵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마는, 이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로 여겨 즐겁게 하고 있다.
뒤늦게 타의에 의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고, 내가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가니 이 또한 기쁘다.
어쭙잖은 사업을 하면서 돈이 좀 벌리면 벌리는 대로 아니면 답답한 대로 마음 한 구석이 늘 비어 있었다.
그 허전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헤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돈이 갖는 한계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 한계를 채워줄 수 있는 일이 아줌마운동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나를 평가한다면 나는 경제장애인에 가깝다. 그러니 내 주위 분들은 나를 불우이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래도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쥐꼬리만큼이라도 하고 있으니 나 자신이 불우이웃인들 어떠한가.
가정사에 도움 안 되는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친인척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고, 몇 년 전 타계하신 시아버님께도 적지 않은 심려를 끼쳐드렸다.
친구들도 내가 인생을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살아간다고 비난 아닌 비난을 하면서 내 일에 비협조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남편과 아들아이의 동의 없는 묵인 아래 이 일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30대 중반, 돈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일 때는 내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돈이 적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었고, 사업에 망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마음을 옥죄고 살았다.
주머니가 비어 있을수록 허세를 부려야 한다는 자격지심도 있었다. 그럴수록 건강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사업이 망해서 돈이 없어요. 그래서 자동차도 팔았어요.
밥 좀 사 주실래요’ 하듯 배 째라는 식의 삶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순간 광명을 본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에 돈과 권력, 학식 많은 사람이 널려 있지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있는 사람 앞에서 돈 몇 푼 가지고 까불락거려 봐야 코웃음거리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사는 삶이 왕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를 1년여,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실패냐 성공이냐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습관도 이때부터 생겼다. 이러한 생각이 아·나·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NGO 활동을 하노라면 사회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 일을 함께 도모하려고 하니 도리없이 사람을 평가하는 좋지 못한 습관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내게 잘하는 사람,
전문성이 뛰어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 등
이 모든 것은 주관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된 위험한 판단일 수 있다는 생각에 판단 기준을 단순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자신에게 쓸 돈은 있어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쓸 돈이 없는 사람, 지식과 전문성은 뛰어나지만 그 능력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 쓰는 사람,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을 도모하기 힘들다는 나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사회를 위해서 혹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 버릇이 생겼다. 이러니 참으로 재미없고 당돌하고 건방진 아줌마로 여겨질밖에. 그럼에도 내 주변의 많은 분이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아·나·기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니 나를 건방지게만 보는 것 같지는 않아서 이를 위안 삼아 앞으로도 아·나·기 활동은 쭈~욱 계속할 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