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이 호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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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 댓글 0건 조회 1,192회 작성일 06-11-13 21:02본문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생각에 붙잡혀 있다면 결국은 밖으로 드러나고 만다.
어떤 사람이 "나는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 코끼리, 이 사람이 코끼리 생각을 하고 있군!" 하고 느끼게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몰려 있던 닉슨 대통령이 "나는 악당이 아니다(I am not a Crook)"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미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닉슨은 악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에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방명록에는 '무호남 무국가'를 썼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지금 내 머릿속에는 정치 생각으로 꼭 차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뒤이어 광주에 내려갔다. 그는 거기서 "지역 이기주의, 지역 간 대결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말했다.
이 말도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지역 이기주의, 지역 간 대결만이 성공을 보장하더라"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사실 DJ와 그의 후원자인 노 대통령이 연속 집권함으로써 호남 차별, 호남 푸대접론은 잊혀져 가고 있었다.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왜 DJ가 "전라도 사람으로 살다가 전라도 사람으로 죽겠다"며 지역 대립을 부추기는 것일까. 두 사람은 이 나라의 전.현직 대통령들이다.
나라 전체를 아우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벌거벗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내년 대선에서 권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햇볕정책이나 북한과 관련된 둘만의 공동이해 때문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추진력을 호남으로부터 끌어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호남 결집과 지금 추구하는 호남 결집은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는 선거만 하면 호남에서 거의 절대적인 표가 나왔다.
적어도 그때는 그것을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많았다. 소위 호남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일종의 자위권 행사쯤으로 치부해 줬다.
차별로부터 오는 피해를 막기 위한 결속으로 봐 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격이 다르다. 호남 결속을 다시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차별을 선택해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사실 DJ와 노 정권 밑에서 호남은 혜택을 누렸다. 지금 DJ와 노 대통령은 암묵적으로 호남 사람들에게 권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호남인들에게 '차별화하여 권력을 유지해 가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 국민 통합보다는 지역 분열을 하라고 떠밀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호남과 햇볕정책은 무관하다. 햇볕은 통일에 접근하는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왜 DJ는 광주에 가서 "햇볕 덕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국민이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까.
햇볕정책의 기반이 호남뿐인가. 북핵을 염려하는 호남 사람들은 과연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할까. 북 핵실험은 호남 상위에 있는 문제다.
대한민국의 존재와 관련된 문제다. '무호남 무국가'가 아니라 '무국가 무호남'의 문제다. 대한민국이 없어지면 호남도 없기 때문이다.
호남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라가 다시 지역감정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호남 사람들의 건전한 결심이 중요하다. 이를 돕기 위해 대통령 후보군들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한나라당 후보라면 호남이 똑같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선거운동의 인적 구성에서부터 믿음을 줘야 한다.
민주당이든 신당이든 호남 쪽 후보라면 DJ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호남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가려는 데도 눈치만 봐서는 안 된다. 그런 모습으로는 전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
나는 정치공학을 믿지 않는다. 한두 사람의 머릿속 구상으로 정치가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의 힘 때문이다.
나는 보통사람들의 이성을 믿는다. DJ와 노 대통령의 지역정치 구상은 그렇기 때문에 힘을 받을 수 없다.
문창극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