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위해 나라망치는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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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학 댓글 0건 조회 2,271회 작성일 06-11-3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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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나라당에서 여론조작하는 108개 유급 알바조직과
미국에서 공작금받는 간첩단체의 허위비방으로 진정한 애국자들인 평화통일세력을 좌파로몰며
미국이 한국을 해방후 남북 강제분단시키던 때처럼 이념싸움 조작하며
냉전시대로 몰아가는 군사독재 냉전세력인 한나라당이 정부와 국가를 멋대로 흔들고있다
한나라당내에도 군사정권에서 독재반대시민학생과 저임금에 임금올려달라는 근로자까지 고문과 살인으로 간첩조작하며
최연희가 동아 여기자 유방 주무르며 언론조작하듯이 어용언론과 어용 사법부 어용 프락치와 민주한국당같은 어용정당까지만들던 공작정치로
군사독재 연장하던 안기부간부출신인 강재섭과 정형근 권00등과 김용갑등 군사독재 수구세력이 대표와 최고위원들로 득세하며
군사독재세력이 판치고 색깔론과 거짓인신공격을 유포하는 한나라당이 되었다
이런 한나라당이 작년부터 한나라당과 그소속 위원장이 불참하여 모든법개정등 국회임무를 못하게 막았다
또 다른당과 국회를 열려고하면 점거농성하며 깽판치는것이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이 사학법개정 한나라당 위원수를 늘려달라고 고집부리며 못열었는데
간신히 열고보니 요번엔 법률을 예전처럼 다시 돌리자는것이며
뉴라이트 같은 비리사학집단과 친일매국언론인 수구신문 조중동과
전두환 심복이 회장인 sbs방송까지 동원하여 여론조작하며 정부를 공격하는것이다
사학비리를 감추려고 누굴위해 사학비리법으로 만들자는것인가?
사학과 종교란 자기돈 들여 자선사업하는것이고 그래서 세금도 않내는데
엄청난 국고까지 보조받으며 엄청난 비리 횡령으로 국고와 학생을 등치는것이다
또 사법권까지 장악하려고 헌법재판관임명도 의회민주주의인 표결에 않따르고
한나라당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임명하라고 깽판놓는것이며
요즘 억울한 저임금과 비정규직근로자 항의데모와
미국압력에 종속적인 정부를 질타하는 이라크파병반대와 미국 FTO무역압박등
종속적인 대미자세를 고치라는 애국적인 데모나 임금인상등 정당한 요구에도
집회허가를 내주지않고 경찰의 강경진압때문에 벌어진 피해도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양심적인 근로자 농어민등  데모가담자에게 피해배상하라는
세계에서 찾아볼수없는 판결인 사법권의 반인권작태는
민주주의의 결사집회의 자유를 짖밟는 행태인것이며
한나라당과 연관된 사건들은 보수적인 사법권이 무조건 한나라당 편들어주는꼴이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권력의 시녀였던 사법권으로 다시 돌아가는 꼴이다
또 장관등 모든 인사권까지도 사학법과 연관지어 사학법을 그전처럼 돌려야 임명동의 해준다며 인사권까지 못하게 땡깡놓고
당장 급한 민생입법도 자기들 이익대로 해줘야 고친다는
더러운 이익집단 매국노들이다
얼마전 바다이야기 피해도 정부와 여당이 사행성오락법을 고치자해도
사학법을 원위치해야 고쳐준다고 한나라당이 입법을 막아 피해가 확대된것이고
한나라당 박형준의원은 사행오락업체에서 뇌물먹고 비호까지한 더러운집단인것이다
이처럼 민노당과 국민들이 사학비리를 없애려면 강력한 법률개정을 원했지만
한나라당이 예산안등 다른 모든일정을 반대한다고 땡깡을 놓아
너무도 느슨한 법률개정이라고 원성이 높았는데
그마저도 그전처럼 법을 돌려놓으라는 억지로 한나라당이 또 깽판치는것이었다
그 사유를 보니
학교 이사장이 학교운영을 좌지우지 할수있게끔 하자는 한나라당 의견과
이사장이 학교운영을 마음대로 장악할수없게 조그만 안전장치를 하자는 열린우리당의 의견차이로 파행과 불참을 하는것이었다
그동안 국민여론조사에서 90%이상 대다수 국민이
사립학교가 실력없는 교수와 학생도 친척이나 돈받고 채용하여 대다수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학교공금을 불법사용하여 학생들에게 부족한 교육과 비싼 학습비를 지불케하여
개인재산처럼그동안 배를 불렸는데
국고를 축내며 학생을 등치는 악랄한 범죄행위라고 사립학교법을 제대로 고치라는 국민의 여론이 높았다
선진복지국가인 다른나라들도 국가에서 보조금받는 학교는 관선이사와 관선감사를 파견
사학을 엄중감시하여 바른운영으로 밝고좋은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하고있고
사학재단 역시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 않하기에 반대의견도 극소수이다
또 종교와 사학재단은 자기돈들여서 사회에 봉사하는 자선사업이다 그래서 세금도 않내는데
한나라당내 사학연관세력과 사이비 종교사학재단이 학교를 돈벌이로 삼으려고 사학개혁을 반대하는것이고
사학재단과 종교재단에서 사학이익위해 만든 뉴라이트집단이 한나라당과 사학이익을위해 공생하는 이유인것이며
이것들이 한나라당위해 친일매국행위와 불법쿠테타 광주민주화운동등을 꺼꾸로 왜곡한 역사책을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서 비리사학재단에 뿌린다니
학생들을 거짓으로 오염시키는 매국노짓인것이며 엄벌에 처해야할것들이고
이것들이 학교에 임명될때 사학재단과 무슨연고로 들어갔는지
자격미달인데 인척이나 돈주고 들어갔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한다
한국은 과거 권력과 연계된 기득권층들이 사립학교를 세워 정치권과도 연계되어
그동안 사학재단 배불리기로 학생관리와 교육투자는 엉망이고
그래서 학생들이 교장실을 점거하고 학생과 재단간에 마찰이 흔하였다
그동안 사학비리는 엄청많았다 얼마전 사립대인 고려대 학생 무더기 제적사건도 비슷한일로 일어난 불상사였다
사학재단 비리는 엄청난 비리로 세금도 축내지만 피해를 본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청에 항의하여도
한나라당같은 사학재단과 연관성이 많은 정치권이 도와주는지 꿈쩍도 않하고
오히려 학생에게만 피해를 물어 퇴학등 징벌을 하고있는 실정이다
각지방에서 뿌리잡은 사립재단은 물론 한나라당의원이나 친척이 운영하는곳도 많지만
얼마전 사학법개정반대 데모까지하던 박근혜일가만 보아도
육영재단과 엄청난 재산의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등 사립교육재단의 실질적 운영자이고
영남대학에서 박근혜 측근의 부정으로 박근혜가 잠시 이사장을 물러나 있고 정수장학회도 비슷하지만
실질적 운영자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미리 심어놓은 이사진이 다 그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립학교법을 못고치게 국회도 팽개치고 돌아다녔지만
자기 실속차린다고 국민들이 냉담하게 쳐다보자 마지못해 그만두고 법개정한다하더니
하는척해놓고 이사장의 권한을 그대로 살리려한다니 눈감고 아옹하는짓
국민을 또 속이려 하다니 뻔뻔하기가 아직도 차떼기 도둑질 배짱이로구나
성추행 최연희사무총장도 처음엔 의원직 사표처리한다 해놓고
한나라당의 검은돈흐름을 파악하는 최연희가 큰소리치자
엄청 뒤가 구린지 수구언론도 조용하고 박근혜도 의원직 사퇴는 최연희 본인에게 맡긴다고 뒤로 빼는꼴이 가관이었고
뇌물먹은 김덕룡도 끄떡없이 행세하는당
요즘 한나라당의 매관매직 공천장사가 그걸 증명한다
언제까지 국민을 속이려하는지 또 속이는줄 알면서도 지역감정을 부추겨
나라망치는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다른나라 사람들인가?
저번 양심적인 시민단체에서 불법정치인 낙선운동이 풀뿌리민주주의와
내실있고 양심적인 정치인을 양산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과거부터 기득권쪽으로 흐르는 보수적인 사법권이 그것도 못하게하여
비양심과 비도덕이 판치는 정치판이 되가고
결국 점점 더 피해보는 국민들의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의식이 다시 살아날겄이다
그나저나 부정축재라고도 할수있는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영남대학은 그렇다치고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우리세금을 전두환이 박근혜에게 건넨 국가에 반납해야할 엄청난돈과
육영재단에서 군사독재당시 보관중인 손기정옹의 올림픽 금메달은  왜 국가에 반납않하는건가 ?
이렇게 국가와 국민의 민생문제와 법개정은 뒷전이고 비리사학으로 돈벌려는 한나라당의 비리실체를 파헤쳐보자
궁정동에 비밀요정까지 만들어 밤마다 박근혜가 30살정도일때 20살정도 어린여자와 연예인을 비양심적으로 성노리개 농락하다
부하 총맞고 죽은 박정희의  비자금으로 제2금고돈 10억원[지금돈은 100배정도됨] 규모만 밝혀졌지
제1금고속의 규모는 밝혀지지않고있다
제1금고에서 당장 쓸돈만 꺼내서 제2금고로 옮겨놓는다는데 제1금고가 규모가 클것이다
그러나 제1금고 열쇠를 관리한 박근혜는 묵묵부답이고
전두환이 6억원을 박근혜에게 주었고 박근혜도 시인했다는데 이부분도 자초지종이 확실하지않다
또 근로자들 저임금에 월급올려달래도 빨갱이로 몰아 가두면서 기업에서 저임금으로 올린 이득금을
근로자파업 막아주고 세금도 깍아주고 뒤에서 잘봐준다고 위협하여 돈을 착복하였으니
그돈이 박봉에 고생한 근로자들 돈과 국가세금인데
그돈으로 군,경찰간부 고위공무원 정치인 동네유지까지 추종자들 떡값주고
어용정치인과 학생들 군사독재반대 데모 막으라고 학교에도 공작금이 갔을것이다
그런방법으로 추종세력키우며 국민에겐 탄압한것이니 차떼기 원조인것이다
일정시절 일반병처럼 강제징병이 아니고 지식층으로써 일본에 충성서약쓰고 자원입대하여
일본사관학교 입교하여 만주에서 독립군 죽이는데 앞장선 친일매국노 일본장교였었고
남한내 공산세력이 강해지자 국군이면서 불법으로 공산당 군사부장 스파이까지겸한 기회주의자를
찬양하는 수구 기득세력이 이때 배불린 세력들이 많다
당시 거래장부 즉 수입기업과 추종세력 떡값으로 나간 지출장부를
국민이 알게될까봐 불안해서 불에 태워없앴다니 엄청난 규모일것이다
[전두환 노태우가 속한 하나회 소속 군장교들도 일년에 3,4차례 떡값을 챙겼다고 진술했었다]

밑에는 위사실을 증명키위해 당시 발행되거나 후에발간된 신문에서 발췌 이어쓴
다른 분의 기사를 필요없는 부분은 생략하고 퍼서 올린글이다
 
79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후에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은 부하를 청와대로 보
내 조사 했다.당시 청와대에는 1층 박정희 집무실과 2층 비서실장실에 각각 비밀금고가 있었고 엄
청난 박정희 비자금이 보관되어 있었다.
합수부 요원들이 청와대 본관 2층 비서실장실을 수색한 끝에 금고속에 보관되어 있던 9억5천만원
의 박정희 비자금을 발견했고 전두환은 이중 6억원을 박근혜에게 건네주었다.
이와 별개로 박정희 집무실에 있었던 또다른 비밀 금고는 합수부 요원들이 손대지 않고 그 내용물
은 모두 박근혜가 챙겼으며 거기엔 얼마의 박정희 비자금이 들어 있었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
았다.
다만 박정희가 1층 집무실에 있던 금고의 비자금을 꺼내 2층 비서실장실 금고속에 넣곤 했다는 증
언에 비추어볼때 적지 않은 비자금이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79년 박정희가 죽은뒤에 박근혜는 6억+알파의 박정희 비자금을 챙긴 것이다. 79년 서울의 웬
만한 아파트 한채값이 1-2천만원대 수준이었으니 당시 6억은 아파트 수십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거액이었고 지금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족히 60억 이상은 될 것이다.
[필자: 잘못돼서 다시 계산하면 당시 그돈이면 중형아파트 30채를 살수있고 한채당 5억잡고 30채
값이면 150억이다]
또한 박근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박정희가 강탈했던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아 매달 1100만원
의 월급과 고급차량,운전기사를 제공받았다.
이처럼 박정희의 부정부패와 독재의 횡포가 고스란히 박근혜에게 대물림 되었고, 박근혜는 이에
힘입어 지금까지 편하게 먹고 살았던 것이다.
박정희의 부정부패를 대물림 한 박근혜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채 화사한 미소를 지으
며 "아버지는 사심없는 지도자였다"는 헛소리를 하고 다닌다.
'사심없는 지도자'가 청와대 비밀금고에는 엄청난 비자금을 쌓아두고 딸같은 연예인,여대생을 불
러다가 옆에끼고 양주 마시며 엽색행각을 벌이는가?
아마도 김대중이나 노무현 아들이 아버지의 엄청난 비자금을 물려받고 아버지가 강탈했던 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10년동안 매달 1천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다가 야당 대표가 되었다
면 조선일보가 절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비판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며, 톱기사로 올라도 몇
번은 올랐을 것이다.
허나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서는 각종 부동산 문제,재산형성 문제를 톱으로 보도하는 조선일보
는 전여옥의 부동산 문제나 박근혜의 이러한 대물림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하긴 2002년 대선때도 조선일보의 편파성은 단연 압권이었다. 2002년 7월 <기자협회보>에서 전국
의 신문 방송 기자 400명을 대상으로 했던 여론조사에서 "어느 언론사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
나 불리한 보도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무려 응답자의 69.3%가 조선일보를 꼽아, 조선일보가 압
도적으로 편파성 1위 언론사로 뽑혔던 것이다.
박근혜의 미소뒤에 가려져 있는 그녀의 더러운 부정부패의 실상과 이에 침묵하는 조선일보, 그래
서 다음 대선도 한나라당,조선일보가 손에 손잡고 힘을 합쳐 함께 뛸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참고자료
1991-05-31 중앙일보 <청와대 비서실-"朴대통령 집무실엔 비밀금고 두개, 통치비용 年 60억">
2002-08-16 연합뉴스 <현직기자 83% "언론사 특정후보에 유리한 보도">
2004-08-04 프레시안 <故김지태씨 “쇠고랑찬 손으로 양도 날인 강요”>
2004-08-19 문화일보 <"부일장학회 사실상 군부가 강탈">
2005-05-16 조선일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대중 목욕탕 아직 못가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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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세한 상황에 대한 관련 기사를 첨부한다.
1991년 5월31일 중앙일보의 <청와대 비서실> 기사다.
<박대통령 집무실엔 비밀금고 2개, 9억 5천만원의 돈 다발 발견>
10.26 다음날인 27일 오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큰딸 근혜양에게 전화를 걸
었다. "수사를 위해 본관 2층 비서실장실을 수색해야겠습니다."
몇시간후인 오후 1시쯤 합수부 수사2국장 우경윤 대령과 수사간부인 중령 한사람이 청와대 본관 2
층에 나타났다. 우 대령은 12.12때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 총을 맞고 하반신 불구가 된 사
람이다. 이날 김계원 비서실장은 낮 12시30분쯤 자택으로 돌아가 사실상 가택연금상태에 있었다.
수색작업의 초점은 비서실장 보좌관실에 있던 높이 1m 20cm, 폭 1m 크기의 철제 금고였다. 1층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소형 <금고1> 과 함께 박대통령의 통치 비자금이 보관되던 곳이었다.
우대령은 권 비서실장 보좌관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했고 그의 입회하에 내용물을 하나씩 확인
해 나갔다. 자기앞 수표 1천만원짜리 수십장, 5백만원짜리 수십장등 비자금 총액은 9억5천여만원.
이밖에 안보기밀문서 몇장과 방위성금 기부자 명단,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세자녀 앞으로 만들어 놓
은 적금통장 3개가 금고속에 있었다.우대령과 권보좌관은 확인서에 도장을 찍은 후 한장씩 나눠가
졌다. 금고는 도장찍은 테이프로 굳게 봉인됐다.

<박정희 비자금중 6억원, 박근혜에게 전달>
며칠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중령 수사관을 다시 청와대로 보냈다. 이번에는 금고 내용물의 정리
작업이었다. 중령은 "본부장께서 6억원은 유족 생계비로 근혜양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가지고 오라
고 하셨다" 고 했다.
권보좌관은 유족 대표로 입회한 박대통령 장조카 박재홍씨(당시 동양철관사장)와 중령이지켜보
는 가운데 샘소나이트 가방에 현금 수표 6억원을 차곡차곡 채워 근혜양에게 전달했다.
그다음 문제는 비자금 장부 처리였다.합수부측은 수사를 의식해서였는지 "우리에게 넘겨줄 수 없
느냐"고 했지만 권보좌관은 "이것은 대통령 기밀사안이어서 누구도 볼 수 없고 남겨둘 수도 없다.
태워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버텼다. 근혜양도 이에 동의했고 합수부 중령은 아쉬운(?) 표정으로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비자금 문서는 권보좌관,박재홍씨,합수부 중령 3인의 눈길속에서 청와대 본관 보일러실 화로 속으
로 들어갔다. <금고2>의 행방에 얽힌 사연은 대충 그러했다. 세인이 계속 궁금해하던 3억5천만원
에 대해 전두환은 89년 12월 31일 국회 증언에서 "계엄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1억원은 합수부 수사
비로 쓰고, 2억원은 육군참모총장에게, 5천만원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했다" 고 털어놓았다. 전두
환씨의 독불장군식 전횡을 읽을 수 있는 또하나의 스토리인 셈이다.
<또 하나의 비밀금고 행방>
그렇다면 또다른 비밀금고인 <금고1>의 행방은 어찌됐을까.
10.26밤 숨진 박대통령 양복주머니에서 집무실 금고 열쇠는 근혜양에게 전달됐으며 근혜양은 <금
고1>의 내용물을 챙겼다한다. 근혜씨는 그부분에 대해 여지껏 확실한 언급을 않고 있어 돈의 액수
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박대통령이 <금고1>에서 돈을 꺼내 <금고2>에 넣곤 했다
는 증언에 비추어볼때 적지않은 비자금이 남아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청와대 1층과 2층
에 있던 두개의 금고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자금에 관한 비밀스런 사연이 수표처럼 차곡차곡 쌓
여 있던 곳이다.
<박대통령과 돈>
<박대통령과 돈> 그 사이의 비선을 추적하는 작업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 같다. 비자금은수면하
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흘렀고 그 일에 몸담았던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하지만 몇몇대목
에선 그 흐름이 공개적인 모양을 갖추었고 수입과 달리 씀씀이는 흔적도남기는 법이어서 대충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능한 일일게다.
통치 18년중 박정권의 비자금은 크게 두갈래 대목으로 나누어지는 모양이다.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후 72년 10월 유신까지가 그 하나고 나머지가 10.26까지 부분이다.세인의 눈
을 피해가며 공화당을 만들기 위해 김종필 그룹이 저질렀던 4대의혹 사건은 (증권파동,워커힐 호
텔,새나라 자동차,빠찡고) 제쳐 놓더라도 유신전까지 박정권이 만들어냈던 권력형 정치자금에는
의혹과 부정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각각 세차례씩의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과 격렬한 전투를 치러내기 위해 박정권은 자금
을 긁어모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자금은 통치의 불가피한 비용" 이라는 철학을 세웠던 박정희 대통령은 효과적인 조달 방법으
로 <4인협의회> 라는 것을 운영했다. 이후락 비서실장,김형욱 정보부장,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
장,장기영 부총리등 막강 4인이 호텔 밀실에 모여앉아 기업을 상대로 정부 이권(利權) 장사를 요리
했다는 것이다.
돈에 목말라했던 기업에 달러 차관이나 은행 대출을 주면서 적게는 3%, 많게는 10%까지리베이트
(일종의 사례금)를 뗐고, 정부 발주공사에서도 일정 비율을 거두는 식이었다. 국내자본이 빈약했
던 시절이라 돈이 급하기도 했거니와 달러 차관은 국내금리보다 엄청나게 싸 기업들은 어떡해서든
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으려고 4인협의회(이후락,김형욱,김성곤,장기영)의 눈치보기에 바빴
다. (중략)
박정희 정치자금에 대한 Q씨의 증언
『정기적인 모금은 추석과 연말 두 차례 있지요. 대재벌 등 A급 기업은 연간 5억∼6억원정도 낸 걸
로 알아요. 유신초기엔 2억∼3억원 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플레도 있고 해서 차츰차츰 늘어
난 거죠. 작은 곳은 2천만∼5천만원도 내고요. 그래서 합쳐보면 연간 총액이 초기엔 20억원, 나중
엔 50억∼60억원 정도 였어요. 같은 기업이라도 액수를 못박아둔게 아니고 실적 좋으면 조금 많이
냈다가 형편이 안 좋으면 좀 줄이고, 뭐 그런 식이었죠. 그런데도 기업한테는 액수가 스트레스였는
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느 그룹의 총수가 그때 경영실적이 별로 안 좋았는데도 회사규모가 크다
고 무리해서 상당액을 총수 개인의 당좌수표로 냈어요. 그런데 구좌에 잔금이 모자라 은행지급이
안되더라고요. 부도에 몰릴 판이었죠. 그래서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께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돌려주라」고 하더라고요.』 (중략)

(76년도에 한달 신문 구독료가 6백원이었다. 지금 신문 구독료가 월 만2천원인 점을 비교해 볼때
딱 20배가 올랐다.당시 돈의 시세를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 박정희는 1년에 50~60억
을 정치자금으로 받아 챙겼다. 지금 돈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천억에 해당되는 돈을 매년 받았던 것
이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 숭배자들이 "청렴한 대통령"이라고 떠받드는 박정희 부정부패의 실상이
다.)
http://blog.daum.net/scs0419/1969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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