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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록금 댓글 0건 조회 1,888회 작성일 07-01-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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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시인 김삿갓의 일화다. 어느 겨울날,그는 서당(書堂)에 찾아가 하룻밤 유숙을 청한다. 하지만 서당의 훈장은 박절하게 내쫓는다.
 
가만 있을 그가 아니었다.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書堂乃早知)/방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房中開尊物)/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生徒諸未十)/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先生來不謁)' 한자의 음을 이용해 훈장을 조롱한 즉흥시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성균관과 서당이 있다. 성균관은 국립 대학으로 학생들에게서 오늘날의 등록금과 같은 학비를 받지 않았다.
 
나라가 양현고(養賢庫)란 장학기구를 운영해 학생을 위한 자금을 조달해 주었다. 서당은 요즈음의 초·중등 단계에 준하는 사설교육 시설이다.
 
 서당은 사설인 만큼 수업료인 '강미(講米)'를 받았다. 학생들은 형편에 따라 간혹 땔감이나 의복으로 강미를 대체하기도 했다.
 
강미는 어느 정도였을까. 17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강미 1년치가 조 1석(144㎏),전 1냥(쌀 10말)이었다고 한다. 18세기 접어들면서 상공인 계층과 하층민의 경제력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도시에서는 이들 평민자제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학원 형태의 서당도 생겨났다. 이 경우,훈장은 현금을 월급으로 받았다. 학생 개개인이 분배해 각자 갹출하는 금액은 매달 60전 내외였다.
 
대학 수업료에 관한 한,무료였던 조선과 비교해 현재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지금 일반 사립 대학의 경우,1년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됐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교가 물가인상률보다 더 등록금을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학교는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나라의 동량을 양성하는 대학이 매년 학기 초마다 등록금 인상을 놓고 몸살을 앓는다. 이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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