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계획과 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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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거대 계획 댓글 0건 조회 1,688회 작성일 07-03-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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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임기 대통령 체제에서 4년이 지나고 1년여가 남은 때부터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요즘 신문을 보면 다음 선거 이야기가 거의 매일 가장 큰 뉴스가 되는 듯하다. 현 대통령과 정부는 할 일이 없고 다음 번 선거만이 가장 중대한 정치 의제라는 인상을 준다. 대통령 취임 초에는 인수 인계를 비롯하여 정책 집행기구 전체를 파악 정비하는 데에 상당한 기간이 소비된다.
 
 정부가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는 시간은 참으로 짧은 듯하다.

황제의 절대 정치 체제하에 있으면서도 대중적 인기가 중요했던 로마 제국 시대부터 내려오는 말에, 빵과 서커스라는 말이 있다.
 
황제가 대중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 이 두 가지란 말이다. 오늘의 정치에서도 근본적인 메뉴는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정치에 월드컵이나 야구나 엑스포나 한류처럼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그들을 열광하게 하는 이벤트적 성격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빵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서커스만큼 흥분거리가 되지 못한다. 또 어느 정도의 경제 수준 이상에서는 빵은 각자가 알아서 지참하는 것이 되어서, 대중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빵도 되고 서커스도 되는 것은 크게는 부동산, 작게는 번창하는 게임들의 도박판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일일지 모른다. (로마에서 황제가 나누어 주는 밀을 받는 일은 일용하는 빵과 달리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일이 큰 사건이 되는 사회가 적지 않다.)

-‘이벤트 정치’실패와 차기대선-

정치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치 수권자가 갈리는 것은 갈리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와 별도로 정치 책임자들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정치가 사람 사는 일의 근본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사람 사는 일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삶의 일상적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 또는 향상하는 일이 그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삶이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이 되듯 달라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이 말은 권력의 자기 미화에 사용되던 말이지만, 권력을 최대한으로 휘두르는 혁명도 느리고 답답한 개혁을 통해서만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선은 늘 그러한 것이겠지만, 이번의 대선이 특히 관심 대상이 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사람들의 기대에 너무 벗어져 나간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치가 바뀔 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의 문제 하나는 정치를 지나치게 큰 이벤트적인 것으로-몇몇의 한정된 수의 큰 이벤트로 생각하고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을 할 듯한 인상을 준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은 업적을 내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삶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는 효과만을 낳았다. 걱정스러운 것은 다음에 어떤 정권이 서든지 간에 그 정권도 정치를 이벤트적 계획의 관점에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거대 계획 정치의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수도 이전 계획을 비롯하여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뉴타운 등 여러 이름의 신도시 또 개발 개혁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그에 따른 투기 붐은 그 결과의 하나이다.
 
물론 정부가 계속적으로 표명한 의도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현실은 그 반대로 갔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 정부 당국자가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취했어야 했다고 그 잘못을 시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택 공급이 늘어야 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는지 모르지만, 무주택자 또는 빈곤층에게 주택 마련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라면, 그것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책의 문제이다.
 
 주택문제를 수요 공급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극히 조잡한 관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빈곤층이 주택을 마련하게 한다는 것은 반드시 대체적인 의미에서의 공급을 늘린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도시 내에서의 재개발의 경우 신주택지 개발은 기존 주택을 없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련된 새 주택이 서민의 손에 쉽게 들어가게 될까? 판자촌 철거가 서민이 살 수 있는 주택의 수를 줄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농촌지역에서는 신개발은 삶의 터전을 없앤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염가로 입주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주택을 생각한다면, 주거 확보와 소유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주거는 직장과 함께 사람이 삶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데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주거의 문제는 이 뿌리 내리는 일과의 관계에서 복잡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주택은 그 자체로서 살 만한 것으로 되기보다는 그것이 위치한 동네가 살기 좋은 것이 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집도 집이지만 기반 시설들을 향상하고 동네의 동네로서의 성격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곳들이 동네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부동산이 된 것은 이러한 것들의 유기적 관계들을 존중하지 않고 문제를 큰 추상적 계획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당국자가 작성한 청사진에 의하여 집과 동네가 헐려나가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하는 과정에 투기는 스며들게 마련이다. 주거지 건설은 토목 건설 계획이 아니라 주민의 인간적 필요에 섬세하게 맞아 들어가는 사회를 만드는 사회 계획에 속한다.

-서민 위한다면 섬세한 정책을-

참여정부가 군사정권과 같은 개발 계획의 정부라는 지적들이 있었다. 거대 계획에 의한 사회변화가 필요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는 초기 단계에서 인프라에 대한 큰 투자를 요구한다. 공산 혁명 후 소련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초를 놓은 것은 그 경제계획들이었다.
 
북한은 거대한 경제계획으로 전쟁 후의 도시와 산업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성공하고 한 동안 이 점에서 남한을 앞질러 갔다. 그러나 거대 계획들은 일정한 단계 이후 부정적인 효과만을 낳게 되었다.
 
 지금 서구의 선진 여러 나라에 사회문제를 거대 토목 건설 계획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정당은 없다.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토목 건설 회사와 결탁한 부패 정당일 것이다. 여러 나라의 정당- 특히 진보 정당이 논의하는 것은 여전히 따분할 수도 있는 고용, 의료, 교육, 사회 안전망, 환경 등에 관한 사회정책이다. (제도는 한 번 대강을 잡아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편의와 여건에 따라 끊임없는 잔손질이 필요하다.) 경제가 이것을 뒷받침하여야 하겠지만, 이것은 기업에 대한 적정한 자극과 유도, 격려의 문제이지 직접적인 의미에서 정부의 소관사가 아니다.
 
물론 정부의 가장 큰 책임은 섬세한 조율을 통하여 산업 활동이 국리민복에 기여하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과제를 선진산업국들의 과제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중점을 거대 건설 계획- 더 일반적으로 거대 계획에 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빵과 서커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거 분위기는 눈을 휘둥그렇게 할 거대 계획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의 기준이 거대 건설 계획들이나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아니라 건실한 사회정책- 국가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교훈이다.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52:08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