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믿고 공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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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구를 믿고 댓글 0건 조회 1,021회 작성일 07-03-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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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믿고 공부하나”
입력: 2007년 03월 15일 18:26:28
 
인천 ㅂ고등학교 3학년 홍모군은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들의 입시 관련 발표를 접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어차피 ‘저주 받은 89년생’인데 상관없다”는 식이다. ‘저주받은 89년생’이란 교육부가 학교교육 정상화 등을 위해 대입제도를 개혁하겠다는 2008년에 입시를 치르는 홍군 같은 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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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 발표대로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대입 제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그 결과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가 1989년생들에게 붙여졌다.

홍군이 고1이던 2005년에 교육 당국은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한다며 내신 평가 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꿨다. 이 조치로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경쟁자가 됐다. 노트 빌리기나 학원 추천 등 사소한 일들조차 ‘비밀’이 돼 갔다. 엄마의 주문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내신 전문학원 수업을 듣게 됐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에서 2004년도에 발표한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반영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2 때인 지난 해엔 ‘통합교과형 논술 광풍’이 불었다. 대학들이 고교 간 학력 차를 극복한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을 입시에 도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내신만으로는 변별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대학들의 주장이었다. 선생님들에게 ‘통합논술’에 대해 물었지만 자신있게 대답하는 분을 찾기 힘들었다. 단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는 답만 돌아왔다. 수능·내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책까지 읽을 시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학원으로 갔다. 학원은 ‘글쓰는 기술’에 대해 가르쳤다. 짜깁기한 교재를 비싸게 팔기도 했다. ‘이럴 때는 이런 단어를 쓰고 저럴 때는 저런 문장을 쓰라’는 식이었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데 그만이라는 논술도 암기식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고3이 된 올해 대학들이 입시안을 발표했다. 수능 비중이 확대됐다. 내신·논술을 못해도 수능만 잘 치르면 명문대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목고에 다니는 친구는 좋아했다. 내신이 안 좋아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학년 때는 내신 바람, 2학년 때는 논술 광풍이 불더니 이제 수능 대세론이 불거지고 있다. 부모님은 또 다시 학원에 가라고 한다. 유명한 수능 족집게 학원을 빨리 알아보라고 했다. 인천 지역에 좋은 학원이 없으면 서울에서라도 알아보라고 했다.

홍군은 가끔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왜 하필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입정책을 2008학년도부터, 그것도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해에 시행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다. ‘89년생의 저주’가 풀리는 방법은 올 한해가 빨리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고 1~3년간 교육당국과 대학들은 입시 요강을 내놓으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내신·논술·수능의 급격한 변화를 모두 겪었지만 2학기 때 또 뭐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교육부와 대학간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한은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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