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 이러므로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목소릴 낼 수가 있고, 이는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라고 말한다. 통합공무원노조의 주장이다. 감각적으로는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성적으로 보아선 아니다. 사실적 논리의 단계가 생략된 ‘혹세무민’의 궤변이다.
공무원이 정부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에 의해 선택된 정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집권을 넓은 의미로, 당정을 놓고 본다면 정권 차원의 집권당 지배는 받을 의무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공무원의 의무다. 아울러 이는 사안적 의무가 아닌 포괄적 의무다. 국민의 일원이 아닌, 공무원 신분으로는 정부 시책을 비판할 권리가 있지 않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에 승복하는 것이 곧 국민의 공무원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함부로 들먹이는 것이야 말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모독한다. 표현의 자유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책임을 수반한다. 이것이 질서가 살아 숨쉬는 사회다. 무책임한 표현의 방종이 자유는 아니다. 표현의 방종은 방만한 무질서 사회다.
통합공무원노조는 정부시책에 표현의 자유를 빗대어 반대 성명서를 내고 또 근무시간에도 정치적 주장이 담긴 복장을 갖추겠다지만, 공무원노조의 이런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노조는 사기업노조와 다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고, 상여금 받고, 자녀학자금까지 받는 공무원이 노조 이름을 들어 국민을 불안하게 할 권리는 없다.
정치와 행정의 이원론(二元論)은 행정을 올바르게 정의한 전향적 통설이다. 현대행정이 정치적 중립성을 기조로 꼽는 이유가 이에 있다. 현대행정의 기조는 이외에 합법성·능률성·효과성·민주성·사회적 형평성 등도 포함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공무원노조의 정치적 주장은 정치와 행정을 일원론(一元論)으로 후퇴시켜 공무원조직 원리와 행정관리를 위협한다. 공무원조직의 제반 원리인 계층제·통솔범위·명령통일의 원리 등은 행정조직의 근간이다. 또한 행정 목표의 효과적 달성을 위한 행정관리 체제가 이완되면 무사안일주의에 빠진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정당 활동에 이용되지 않고, 정치로부터의 중립적 세력권으로 공익성을 추구하는데 있다. 이런데도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복무규정이 정치활동 금지 조항으로 정한 집단 서명운동, 문서 또는 도서의 공공시설 등 게시행위로 정부의 시책 반대를 우정 기도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행위다. 공무원의 품위유지 한계 일탈에 대한 징계를 노조 탄압으로 우기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양(量)적인 정치는 넘쳐나면서도 질(質)적인 정치는 척박한 것이 한국적 현상이다. 정치를 논하는 입은 많아도, 정치 수준은 예전 그대로다. 이젠 공무원들까지 정치를 들고 나선다. 이들은 정치적 비판을 하는 것이지, 정치 실물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업어치나 뒤집어치나 그 말이 그 말이다. 공무원노조가 국민이 선택한 정부시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선 앞으로 어느 정부든 일을 하지 못한다. 정치권이 경계해야하고, 국민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정녕, 그토록 정치를 하고 싶으면 깨끗이 옷벗고 정치꾼으로 나서라, 국민의 혈세로 월급 받아 가면서 엉뚱한 짓 하는 공무원 정치꾼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통합공무원노조가 해야할 일은 굳이 정치 개입이 아니고도 참 많다. 인사 부조리, 상벌체제 혁신을 들 수 있고 승진제도 개혁도 들 수가 있다. 부패척결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공무원사회의 정화는 비단 뇌물수수 같은 지하부패 척결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초과근무수당 조작이나 앉은뱅이 출장비처럼 관행화된 공식부패 및 준공식부패도 추방해야 된다. 이런 공직기강의 성공적 확립에 앞정서면 행정 관리직의 상사층이 긍정적으로 보게되고,
국민사회로부턴 신뢰의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다. 통합공무원노조가 불행하게도 끝내 정치성 지향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인지, 공직기강 확립 선도로 신뢰를 받을 것인지는 그들 선택에 달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불행한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여 걱정이다. 이들이 말한 ‘국민의 공무원’이란, ‘특정 정당의 공무원’으로 전락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국민사회의 의구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