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좌담회 댓글 0건 조회 1,251회 작성일 09-12-14 09:22본문
[동아일보] “잘나가는 지역 베끼면 만년 2등… ‘우리만의 것’ 찾아야”
“다른 지역을 모방하면 늘 2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동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최상철 지역발전위원장과 자리를 함께한 강희복 충남 아산시장, 박선규 강원 영월군수, 이석형 전남 함평군수, 천사령 경남 함양군수 등 4명의 시장 군수는 국내 기초생활권의 새로운 발전 전략에 대해 ‘창조와 차별화’를 키워드로 꼽았다.
이날 좌담회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지역발전위가 최근 공동 실시한 전국 163개 시군 경쟁력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시군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 시군은 이번 경쟁력 평가에서 차별화된 발전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지역으로 평가받은 곳이다.
▶1일자 A1·4·5면, 2일자 A6면, 3일자 A10면 참조
좌담회는 임규진 미래전략연구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 숨은 역량 활용, 차별화로 승부해야
―163개 시군 경쟁력 평가에서 수도권 주변 도시가 대체로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일부 군 지역도 그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보였다.
▽함양군수=함양군 인구는 4만1000명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서울, 싱가포르보다 넓다. 싱가포르와 같은 작은 지역도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됐다. 함평군이나 함양군, 영월군 모두 가진 것은 없지만 자랑할 만한 지역으로 키워낼 수 있다. 각 지역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 활용해야 한다.
▽영월군수=지역마다 숨은 역량이 많다. 영월군은 광산지대라서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규석, 백운석, 텅스텐 등이 아직 많다. 소재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광산지대를 신사업 클러스터로 만들 계획이다.
▽함평군수=잘나가는 아이템을 모방해 ‘짝퉁’을 만들어 성공해도 결국 2, 3등밖에 못한다. 함평군은 생태관광전략으로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도시 모델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함평군수=지방자치단체가 각 지역 자산을 특화하고 세계화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도와 달라. 지방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
○ 교육 통해 내부 혁신 역량 키워야
―지자체 공무원의 의식 전환과 지역 주민의 자신감도 필요할 것 같다.
▽아산시장=지자체 내부 역량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공무원이 전문성과 실천 역량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혁은커녕 선출직 단체장과 공무원 간 갈등만 커진다.
▽영월군수=우리는 한 달에 2번 정도 주민 교육을 한다. 이 교육을 통해 주민들이 지역 발전 전략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농한기에는 영농교육에 집중한다. 영농교육 열기가 매우 뜨겁다.
―인구 감소를 막고 핵심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교육 투자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영월군수=가장 취약한 것이 교육 문제다. 교육 지원 조례를 만들고 1년에 3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주로 원어민 교사, 방과 후 야식, 교사 수당 등에 들어간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택시로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준다. 농촌이라 부모가 밤에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군부대와도 협력해 사병들이 와서 공부를 도와주기도 한다.
▽함평군수=명문대 진학자 수만 강조하는 교육에는 반대한다. 각 지역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살려 특성화 학교를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함평농고는 학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자 골프고로 전환했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상금왕이자 신인왕인 신지애 선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또 다른 폐교 직전의 공립학교는 ‘보건고’로 전환했다. 이들 학교는 외지 ‘유학생’이 많아 지역 출신 학생이 탈락할 정도다.
○ 포괄보조금 활용, 중장기 비전 필수적
―내년에 도입되는 포괄보조금 제도에 대한 각 지자체의 기대가 크다.
▽함평군수=지금까지는 보조금에 중앙정부의 ‘꼬리표’가 붙어서 단체장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었다. 물론 포괄보조금이 도입된다고 단체장이 주민의 인기에 영합하면 안 된다. 지역을 초월해 지역 간에 연대할 것은 연대하면 경쟁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산시장=노무현 정부 때 지방 실정에 맞는 예산 편성을 하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중앙집권화돼 시군은 꼭두각시 노릇만 했다. 포괄보조금도 도(道)에 집중적으로 재량권을 준다면 문제다. 도 역시 시군 사정을 잘 모른다. 시장 군수에게 포괄적 재량권을 줘야 한다.
▽위원장=포괄보조금 제도에 여러 가지 의문점과 걱정이 있을 것이다. 앞으론 시장 군수의 재량권이 계속 커질 것이다. 하지만 보조금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 계획이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공모사업도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영월군수=공모사업은 유지하고 포괄보조금은 지자체의 장기 비전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함평군수=공모사업은 계속했으면 한다. 과거 정치 논리에 좌지우지되던 보조금 제도가 공모제 도입 이후 객관성을 갖게 됐다. 또 공모사업을 따내기 위해 지역주민과 공직자가 열정을 갖고 하나가 되는 장점도 있다.
○ 연계사업 지원 위해 예산 확보
―개별 시군의 독자적인 발전도 좋지만 인접 지역 간의 연계와 협력을 통한 발전도 중요한 전략이 될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역할도 매우 크다고 본다.
▽위원장=내년부터 지역 간 연계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 정부는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수도 이전, 혁신도시, 기업도시 건설만 얘기했을 뿐 시군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기초생활권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겠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어떻게 하면 지원받을 수 있느냐”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역발전위는 내년 1월 말까지 사업계획을 접수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163개 시군을 △도시형 △도농통합형 △농산어촌형 등 3개 유형으로 구분해 유형별 맞춤형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제가 중앙정부의 역할론으로 옮아가자 참석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민원’을 쏟아냈다. 천 함양군수는 기업 규제 완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함평군수는 “정부가 신설키로 한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가 오히려 낙후된 지역에 불리하다”며 “차라리 고향을 떠난 지역 출신에게 세금을 걷는 ‘고향세’를 신설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163개 시군이 똑같은 패키지로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다. 창조적인 노력을 하는 지역이나 지역 간 연계 사업에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다”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사회=임규진 미래전략연구소장
정리=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4개 시군 성공전략 살펴보니
천혜의 환경 활용하고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가 마련한 ‘기초생활권 발전 전략을 위한 토론회’에 초청받은 4개 시군의 전략은 창조적 발상과 차별화로 모인다.
전남 함평군은 마땅한 문화재나 산업기반이 없어 인구 유출이 높은 지역이다. 낮은 농업 소득만으론 지역 경제를 지탱하기조차 힘들었다. 농외소득을 높이기 위해 생각해낸 게 환경을 상징하는 ‘나비축제’였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함평군은 관광객 유치를 통한 농외소득뿐 아니라 친환경농산물 판매소득도 덩달아 올라갔다.
경남 함양군은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다. 1000m 고지만 34개나 되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30%에 이른다. ‘산’ 외에는 별다른 자원도 없다. 전북 고창군의 ‘복분자’ 사업을 벤치마킹했다가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베끼기’의 결과였다. 교훈을 얻은 함양군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을 활용하기로 했다. 주변에 널린 산에 산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 함양군에서 올해 1억 원 이상 소득을 올린 주민은 498명에 이른다.
강원 영월군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산 덕분에 꽤 융성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는 급감하고 도심은 슬럼화됐다.
영월군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문화와 예술에서 찾았다. 박물관을 짓고 도시의 거리와 시설에 문화 콘텐츠와 스토리를 심었다. 동강 래프팅, 산악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레포츠 문화도 확산시켰다. 2006년 40만 명이었던 관광객은 올해 100만 명을 넘었다.
충남 아산시는 탕정면 일대에 조성된 삼성LCD산업단지를 ‘지방산업단지’로 조성했다.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받으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다소 받을 수 있지만 기업에 대한 서비스를 제때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기업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시가 나서서 부품업체 협력단지를 추가 조성했다. 아산시는 지난해 인구가 2만1000여 명이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