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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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민의 애환 댓글 0건 조회 907회 작성일 09-12-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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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굶고 나면 눈에 보이는 게 모두 먹거리인 것만 같았던 6·25 전쟁 때 나는 실제로 그 경험을 했다.
 
허기가 져 미칠 듯한 그 고통스러운 순간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헐벗고 굶주린 그 전란 시절 어머니가 막걸리 빚는 집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를 사카린을 넣고 끓이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아홉 살이었던 나와 일곱 살, 세 살 동생들은 미친 듯이 먹고 또 먹었다. 어느새 우리 세 형제는 얼굴이 빨개지고 만취가 돼 곤드레만드레 흥얼거리며 곯아 떨어졌다.

지게미는 곡식으로 술을 빚은 뒤에 술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하는 것으로 재강, 술비지라고도 한다.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뜨끈뜨끈하게 끓여낸 모주는 알코올 농도가 매우 낮아 맹물을 겨우 면하는 정도의 것이지만,
 
1·4후퇴 겨울 피란민들은 밥 대신 먹었다. 어른들은 어쩌다 막걸리라도 한 사발 얻어먹으면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막걸리가 웰빙붐을 타고 효능이 재조명되고 있다. ‘쌀과 누룩으로 빚어 그대로 막 걸러내 만든’ 막걸리는 김치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발효식품의 하나로서 전래의 산물이다.

막걸리를 빚는 과정에 대한 외가 추억이 떠오른다. 외할머니가 술을 빚기 위해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말릴 때가 어린 내게는 가장 기뻤다.
 
 쫄깃쫄깃 입 안에서 씹히는 고두밥의 촉감과 맛과 고소한 향기. 방아에 누룩을 찧을 때 외할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제신(祭神) 앞에 임하는 그대로의 경건한 표정이었다.
 
고두밥과 누룩 빻은 것을 따뜨무리한 물에 비벼 독에다 넣고 이불을 둘러놓으면 3∼4일 뒤 매캐한 주정 냄새와 함께 뽀그락뽀그락 소리를 내며 술이 괸다.
 
온 방 안을 채워 오는 향긋한 술 냄새. 5∼6일째가 되면 익은 정도를 보아서 처음으로 체에 걸러 시음에 들어간다.

농사철 들판에서 새참이나 점심 때 마시는 막걸리도 으레 막사발로 마신다. 모심기 노래에도 막걸리와 막사발이 등장한다.
 
막걸리는 사발에 가득 부어 쉬지 않고 훌렁 마시고 비워야 제격이다. 특히 농부가 옷깃을 풀어 헤친 채 논두렁이나 밭두렁 나무 밑에 주저앉아 한 사발 마시는 게 썩 잘 어울린다.

옛 선비들 또한 말한다. 막걸리는 흰 눈이 펄펄 내리는 한밤에 고요한 산재(山齋)에서 데워 마시는 흥취가 고대광실 흥청망청 벌이는 술자리 고급 양주에 어찌 비할 수 있으랴.

막걸리가 가난한 문인들에게도 얼마나 절절하게 사랑을 받았던가. 천상병의 시가 있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막걸리를 주식으로 하고 밥 한 숟갈이나 우유 한 모금을 부식으로 해 살았던 기인이다. ‘비 오는 날’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아침 깨니/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백오십 원 훔쳐/아침 해장으로 간다./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이리 사랑받은 까닭은 서민에게 값이 싸서 좋지만 건강식 막걸리의 5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허기를 다스려 주니 1덕, 취기가 심하지 않으니 2덕, 추위를 덜어주니 3덕,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워주니 4덕, 의사소통을 원활케 하니 5덕이다.
 
 본디 한국인은 사발에 가득 부어 시원하게 들이키는 희고 걸쭉한 이 막걸리를 통해 일의 흥을 돋우고 정을 나눠왔다.

그 애환의 막걸리로, 그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우던
6·25전쟁 시절은 황량한 전장,
누렇게 그은 황토 흙,
노을처럼 붉게 타는 포화와 초연,
시뻘건 유혈 속에서 상처 입은 포효,
신음과 규환,
헐벗고 굶주린 처절한 생명의 처연한 모습은 그대로의 민족의 울음이었다.
 
다른 나라 원조를 받아야 연명하던 우리가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고 한다.
 
그 6·25 전란이, 새해가 밝으면 60년을 맞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프랑스 로마네 꽁띠 2000만원짜리 와인보다 우리 막걸리와 그 지게미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