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勞永逸` `和而不同` `事豫則立`.. 으레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에 듣고보기 어려웠던 한자성어들이 언론보도에 대거 등장한다.
한자성어는 흔히 복잡하고 표현이 어려운 생각을 쉽고 함축적으로 전달하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신년사를 통해 새해 사업 계획과 구상을 펼쳐 보여야 하는 조직의 수장들이 한자성어를 애용하는 이유다.
정관계 리더들이 인용한 한자성어를 통해 이들이 보는 경인년이 어떠할지 미뤄 짐작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신년 회견에서 임기 중반인 올해 “일로영일(一勞永逸)의 자세로 일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일로영일`은 중국 북위의 학자 가사협이 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적 `제민요술`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는 의미로, 명나라 역사서인 `증예전`에도 등장한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재임 중 각고의 헌신을 다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다음 정부와 세대에게 선진일류국가를 물려주자는 대통령의 각오가 담겨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밝히겠다는 뜻이라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선 당장의 반대에도 불구, 먼 미래 후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밀어붙일 수 있다는 식으로도 들린다.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은 4대강과 세종시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를 논어에 등장하는 사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풀었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이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름을 조화시켜 나가는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아무래도 부동(不同)보다는 화(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김 의장은 “국민의 여망을 받들겠다면서 개인의 이해, 정파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외치면서 편협하고 독선적인 생각에 갇혀 정작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 세종시 최종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는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뜻의 한자성어 `사예즉립(事豫則立)`을 꼽았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정책이 결정 난 후의 피드백 뿐 아니라 정책 결정 전에 미리 정책이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피드 포워드(feed forwarfd)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세종시 최종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그 파장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경제부처 수장 격인 기획재정부의 윤증현 장관은 김형오 의장의 `화이부동(和而不同)`에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관계 부처, 시장과의 소통 부족을 자성하며 “정책담당자로서 경제문제를 풀어나갈 때 가져야 할 자세의 기본이 바로 ‘이해’”임을 강조한 것.
윤 장관은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정책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이해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또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란 가르침을 받들어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을, 속맹자의 `교자채신(敎子採薪)`의 교훈을 통해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무항산 무항심`은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안정도 누리기 어렵다”는 뜻이고, 교자채신은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의미다.
이밖에 국내 금융정책의 수장인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위기를 통해 근본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자”면서 `근고지영(根固枝榮) 천심유장(泉深流長)`을 인용했다.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정호열 위원장은 “정책목표를 압축해 집중하겠다”면서 한비자의 `우수화원 좌수화방 불능양성(右手畵圓 左手畵方 不能兩成)`을 들었다.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두 가지 모두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뜻. 정 위원장이 집중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촉진과 소비자후생의 증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