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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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치권력 댓글 0건 조회 1,241회 작성일 10-01-0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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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언제부터인가 학생들 사이에서 ‘언론고시’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자신의 출세와 가문을 빛내는 일이 되어온 한국사회에서 언론사 진출은 소위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언론고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언론사 진출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기회를 줄 것이다.

 

첫째는 언론사 진출을 통한 자아성취욕구의 기능이 그것이고 둘째, 언론사에 종사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의 보장이 그것이며 셋째, 언론사 진출이 가져다줄 새로운 기회의 보장, 이른바 정치적 진출을 위한 언론사 진출이 그것이다.

 

  그러나 언론사 진출이 직업으로서 자아성취욕구를 가져다주기보다는 입신양명의 지름길이 보장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언론고시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이것이 언론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사회와 같이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철저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진출이 용이한 언론사로 인재들이 몰리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정치인들 중에는 언론사 출신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세 가지 측면 가운데 세 번째 측면에 착안하여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물론 한국언론의 정치적 경향성이 언론참여자들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주와 언론참여자들, 그리고 주변환경에 의해서 이러한 정치적 경향성이 결정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언론의 정치적 경향성을 일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Ⅱ. 한국언론의 몇 가지 문제점

1. 언론의 정치지향성

  한국언론은 지극히 정치적 또는 권력지향성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해바라기 언론'이 그것이다. 한국언론은 언론과의 유착없이 성장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권력과 밀착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가 있을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언론의 정치적 굴종은 다른 문제와 깊숙이 연계된다. 즉, 언론의 정치 지향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그것이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언론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의 이익과 사상을 반영하고 기존의 지배질서를 수호하게 마련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언론의 원형인 구미 자유주의 국가의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구미의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은 견지하고 있어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행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권력과 밀착되어 있어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그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반영하여 왔다. 이를 크게 ‘권력과 언론’, ‘자본과 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정치권력은 대개 관료조직, 법집행기구, 경찰, 군대, 의회 등과 같은 국가기구를 통해 유지된다. 그러나 정통성이 결여된 정치권력은 주로 폭력적 국가기구, 이를테면 군대나 경찰과 같은 것에 의해 자신을 유지시킨다.

 

 따라서 권력, 특히 폭력으로 유지되는 독재권력은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려고 하게 되는데 여기서 권력은 언론을 통해서 자신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권력은 언론을 통해, 간섭하고 회유, 매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언론사를 소유하거나 그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통해 원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언론사주, 언론인, 기고가를 매수하거나 여러 가지 혜택을 줌으로써 그들의 보도나 사설, 기고가 편향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 언론통제나 간섭을 손쉽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사 설립요건을 강화하고 설립된 언론사를 통폐합시켜 그 수를 줄인다.

 

이렇듯 권력집단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도구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에 의해 순치되어 정권의 지배도구로 전락한 언론을 제도언론, 또는 관제언론, 또는 권언복합체라고 부른다. 이러한 언론형태가 바로 우리 한국언론의 전형적인 언론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는 ‘언론이 정치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대단히 강력한 이념이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어떤 정치권력도 이 이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정통성이 없는 권력집단들은 입으로라도 이 이념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은밀하게 언론을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권언복합적인 언론형태에 언론인들은 언론인 나름대로 일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언론의 자주성을 위해 투쟁한다.

 

 1975년과 1980년의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언론사 외부에서 민주언론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왔으나 언론사 내부에서의 자율활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또한 일선 언론인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때였으나 아직까지는 조직적이지 못하였으며 그 힘 또한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2. 언론의 권력화 

  우리 언론의 불공정성을 유도하는 것은 권력의 간섭만이 아니며 또한 언론의 자주성을 해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지배적인 정치권력 못지 않게 언론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기업적 특성이다. 언론이 오늘날과 같이 거대한 수익사업체로 성장한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렇다.

 

언론의 기업성이 커질수록 언론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은 이윤증대를 꾀하는 기업의 논리, 자본의 논리이다. 자본의 논리는 언론을 지배하면 지배할수록 언론은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내세워 누구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더 큰 시장을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점에서는 서양의 언론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시장 개방으로 인한 언론매체의 양적 증가는 언론사간의 시장경쟁을 더욱 심화시켰고, 주요 언론매체인 일간신문의 경우 제한된 광고시장을 놓고 다수의 신문이 자유경쟁함으로써 많은 신문사가 적자경영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성장과 광고시장의 저변 확대로 각 신문사의 총매출액은 꾸준히 증가되어 왔으나 당기 순이익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 언론이 대기업화 할수록 그 운영과 수익을 위해 광고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오늘날의 언론기업의 수입은 대부분이 광고가 차지한다. 따라서 언론기업의 성패는 광고수입의 대소에 달려 있게 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언론들은 광고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언론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되고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해 많은 독자나 시청자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개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은 모호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한 입장을 중립이나 공정이나 하는 말로 미화하게 된다. 결국 공정성은 언론사간의 경쟁심화로 시장의 포로로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2)

  게다가 언론은 광고주, 특히 대기업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해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춘다. 그리하여 언론기업주는 기존의 재벌중심의 독점자본주의체제를 옹호, 유지하고 강화하는 보수적인 언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장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언론의 기업성은 언론의 내용을 현상 유지적으로 만든 가장 효과적인 규제장치가 되는 셈이다.


3. 공정성의 문제

  우리는 정치적 검열의 새로운 시대, 민주적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

 

3) 키인(John Keane)의 지적처럼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을 유린하는 검열의 다섯 가지 형태는 협박, 금지, 체포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하는 정부의 비상권력, 국가권력의 핵심인 경찰조직과 군사조직의 감시, 실상과 무관한 이미지 조작, 국가의 일방적인 홍보정책, 국가 내의 수직적․수평적 조직들에 의한 조합주의의 횡행으로 나타난다.

 

  한국언론은 키인의 지적에서 자유로운가? 한국언론이 처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정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공정성의 사전적 해석은 ‘어느 쪽에 치우침이 없이 올바른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어느 쪽에도 특별한 호의나 편견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공정성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 그 사회가 준봉하는 근본적 본류, 경제적 정의 등이 내포되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그런 언론의 화두인 것이다.

  공정한 언론이 되기 위하여, 또 공정한 시각을 갖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인의 자세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언론종사자들의 적합한 시각과 정신이 포함된다. 거기에 그의 판단력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언론의 공정성이란 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념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과 관련하여 보도의 공정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보도가 공정한 보도인가? 보도의 공정성은 말할 것도 없이 보도내용과 관련하여 보도자가 특별한 호의나 편견을 갖지 않은 채로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보도내용과 관련된 당사자들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자세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보도자가 특별한 호의나 편견이 없이 행한 보도를 공정한 보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공정성은 그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물리력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한 한국정치체제에서는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의 공정성은 민주화의 정도와 비례하여 가늠되어 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보도자가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어떤 호의나 편견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공정한 보도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주장하는 것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완벽한 공정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공정성 그 자체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가 받아들일만한 언론의 현실적 공정성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정성을 규정함에 있어서 그 요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

 

언론 공정성의 첫 번째 요소는 언론인이 가능한 한 가장 광범하게 여러 의견들을 수집하고 취합하여 그들의 견해를 표현되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인은 그들의 언론행위에서 한 가지 견해만을 전달해서는 공정성을 상실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이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마다 입장과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종사자는 자신의 견해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되는 것이다.

 

  공정성의 두 번째 요소는 어떤 사건에 대한 여론의 향방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갖는 각자의 견해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론인이 수용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야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의사표현을 보도해야하는 의무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더 큰 비중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언론종사자의 공정성의 능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에 도전하는 소수의 의견도 주목을 받아야 하지만 그 다수의 의견이 충분하고 명확하게 제시되고, 아울러 그 다수의견에 도전하는 소수의견의 도전의 상태와 의미도 명확히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양비론의 또는 양시론의 모순에 빠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의견제시자의 정치적 위치, 사회적 지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공정성의 세 번째 요소는 언론 종사자가 갖는 견해와 사회에 대한 시각의 범위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언론종사자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공정성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기의 지배적인 의견이 언제나 지배적인 의견일 수는 없다.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될 수도 있다.

 

언론의 공정은 이런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성을 그 개념적 혼동과 적용으로 인해서 흔히 많은 오해와 오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공정성에 대하여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공정성에 대한 개념 정립 이전에 이로 인한 오해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이다. 특히 언론의 보도와 관련하여 공정성의 준거가 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정성은 어떤 명백한 사실이나 진실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에서 전술하였듯이 공정성이란 논쟁을 불러 일으킬만한 쟁점으로 대중들의 의견이 여러 가지로 엇갈리는 문제에만 적용된다.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규명된 공리나 또는 주어진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 그 사실에 대해 공정성을 적용하는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의 진실성 여부에 의혹이 있는 경우 그 의문 제기에 대해서는 표현의 기회를 허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주어진 사실의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도 공정성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명백한 사실 그 자체는 공정성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을 왜곡시키거나 희석시키는 것은 진정한 공정성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을 산술적 균형이나 숫적 우세와 같은 의미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어떤 쟁점에 대하여 제시된 의견을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그것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여 산술적 균형을 맞추는 것은 공정성을 자못 해석한 것이다.

 

어떤 의견의 사회적 중심성과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공정성의 진정한 의미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산술적 균형을 담은 공정성은 모든 반대되는 의견들이 서로를 상쇄하도록 하여 아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 하기도 한다.

 

언론이 지양해야 할 양비론(兩非論)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정하고도 균형된 시각이 필요한 산술적 균형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국가간에 일어나는 전쟁이나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반란과 같이 특별한 긴장 상태를 생산해 내고 국민 대다수가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첨예한 대립과 국가간 또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엄격한 균형은 오히려 공정성을 해친다.

 

  우리가 공정성에 대하여 오류를 범하는 것 중의 하나는 공정성을 중립성이나 초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성은 앞에서 전술하였듯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과 보도를 위해 어느 한쪽에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언론이 공정성을 이용하여 사회적 행위의 준거의 틀을 제시하여야 하는 언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공정성은 사회의 민주화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선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공정성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방관자적 태도나 이른바 양비론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필요한 적극적 자세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의 공정성은 서로 상반되는 견해나 주장을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양쪽 모두의 입장을 균형 있게 제시하여 수용자의 올바른 판단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견해나 주장이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정당성과 부당성,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등의 문제와 같이 명백히 어떤 가치를 포함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논란이 된 문제가 가치판단을 포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체로 그렇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의 공정성은 이 양자의 경우에 서로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가치판단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는 공정성은 엄격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예를 들면, 노사간의 임금협상의 경우와 같이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닌 경우는 노사간의 입장을 균형 있게 제시하면 그것이 곧 공정한 보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공정성이 다소 기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경우에는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명백히 편파적인 입장을 노출한다.

 

  특히 정치분야에 대한 보도는 공정성이 담보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늘 수반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은 정치권력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져 왔다. 거기에는 정치권력의 협박과 회유도 있었고, 언론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힘 앞에 스스로 주저앉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공정성을 논하기 이전에 정치권력의 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곤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진 사회 구조 속에서 언론 스스로가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접어두고 스스로 권력에 접근하려는 경향에 더욱 경악하는 것이다. 이제 언론은 이러한 지적에 공정성의 책임을 정치권력에만 화살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노사관계 문제에 있어서도 공정성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대개의 언론사들은 사용주의 입장은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반면 노동자의 입장은 단편적이거나 비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는 사회적 불안을 제공하는 주장을 전달하거나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시위․파괴 장면을 수용자들에게 주로 전파․제시함으로써 불공정한 보도로 일관한다.

 

이는 정치권력의 요구나 대기업의 사주의 요구 이전에 관행화 되어온 언론의 보도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자본에 스스로 굴종하는 언론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어떠한 가치가 내포된 주장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 공정성을 일정한 원칙 없이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공정성은 그때부터 공정성을 상실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어떤 합리적인 주장이 있다고 치자.

 

이에 대하여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이를 공정성이라는 명목으로 양쪽의 주장을 균등하게 취급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공정성의 보도 대상이 되는 합리적 주장보다는 오히려 비합리적 주장을 공정한 보도로 오인하게 하여 오류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가치를 내포한 이러한 주장은 언론 수용자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 언론을 되짚어 보자. 어떤 언론이든 공정성과 중립성을  견지하겠다는 것을 내외적으로 표방한다. 마치 관례처럼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토론한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과 중립성은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공정하고 중립적이려는 노력,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공정성을 인정하려 한다.

 

 그러나 언론이 스스로 공정성과 중립성을 내세운다고 그 언론이 공정하다거나 중립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언론이 내거는 공정과 중립은 독자나 시청자를 차지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 수가 많다.

 

때로는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의 무시에 의해서 때로는 기계적인 균형보도에 의해서, 때로는 특정한 시각이나 전망에 의해서, 언론은 공정과 중립의 표방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불공정하고 비중립적인 수가 많다.

 

 언론의 이러한 속성은 물론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논리에 스러지는 언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며, 결국은 공공의 목적보다는 그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태도는 언론 스스로의 노력과 수용자들의 거침없는 비판에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Ⅲ. 한국언론의 방향성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언론의 정치적 사건의 보도경향과 그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현재 우리의 모습을 조망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한국언론의 공정성과 관련하여 지적된 문제점들에 대한 방향성을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해 보자.

 

 과거에 정부의 언론정책은 주로 언론을 정권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통제하려는 목적에서 수행되었고 또 그렇게 인식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언론정책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언론에 대한 그런 정권이익 차원의 통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언론에 대한 개혁을 포기하거나 언론정책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언론과 같이 중요한 사회제도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언론개혁을 위해 추구하고 시행해야 할 정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첫째,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증진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정권적 차원의 통제를 위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축소하는 그런 정책이었지만 이제 그와는 정반대로 그것들을 제고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과거 한국언론은 정치적으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주성을 쟁취하는 것이 한국언론의 최대의 목표였다.

 

따라서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라면 언론에 대한 요구나 간섭도 배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제5공화국 정권에서 보여주었던 언론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은 물론, KBS를 비롯한 공영 언론사 사장의 선임에도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생각을 국민들에게 올바로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공개적인 기자회견 등을 통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 비공개적으로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을 정치권력의 홍보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저의를 버려야 한다.

 

오히려 정치적 관용(political tolerance)의 측면에서 언론으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도록 고무하고 언론의 감시나 비판에 관대해야 한다.

 

정치권력에게 언론의 감시와 비판은 입에 쓴 약과 같다. 그것은 당장에는 반갑지 않은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권력과 국가에 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적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없었던 과거 권력자들이나 정권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가.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없는 권력자나 정권은 부정과 부패가 쌓이고 커져서 결국 비참하게 결말을 맺게 된다. 이것은 역대 한국정권의 역사가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