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 갖고 가고싶은 물건이 무었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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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덤 댓글 1건 조회 905회 작성일 10-01-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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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무덤에 갖고 가고싶은 물건이 무었이냐고 물었다.
 
세째는 자기가 모았던 귀중한 보석들이란다.
아마 그것을 구하러 다닌 정성을 생각하면 그럴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집트의 미이라이다.
공연히 보석을 많이 갖고있다가 무덤이 훼파된 것이다.
죽어서도 무덤이 제대로 보존되려면 보석을 넣는 것은 끔찍한 일일게다.
 둘째는 TV란다.
아마도 드라마를 그곳에서 계속해서 보고싶은게다.
남자들은 아마 뉴스를 보고싶어서 , 심심할 때 보고싶다는 바램일게다.
 
첫째는 무선 전화기이다.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할 모양이다.
자식이 보고싶고 친구가 보고싶으면 전화를 걸 셈이다.
 
하여간 재미가 있다.
 
그런데 정말 죽음의 세계가 그렇게 낭만의 세계일까? 하는 문제이다.
눅 16장에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사건이 나온다.
 
건너 오고싶으나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다.
또 알리려고 해도 알릴수가 없는 세계 말이다.
뿐만 아니다.
거기 다녀온 사람이 부활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 주어도
결코 이해되지도 않고 돌이킬수도 없는 ,
지금 현재가 중요한 세계가 우리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결코 낭만적인 산책이 아니다.
 
천상병시인의 '귀천'이라는 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마치 소풍나오듯 이땅에 왔다가
훌훌털고 하는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냥 소풍나오듯 살다가 간다는 것인데 이런 표현들은
인생을 진지하게 산 사람들의 인생표현이다.
 
그는 공부도 많이 했다 . 그러나 자연을 말하고 신앙을 바르게 살고
삶을 진지하게 살았기에 이제 소풍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노래한 것이다.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관 안에  전화기를 넣고 맞이할 정도의 것이 죽음의 세계가 아닌데. . . .
 
왜 점점 삶을 가볍게 만들어 가는 것일까?
좀더 진지한 인생의 고뇌가 있어야 하지는 않는 것일까?
그래야 인생을 가치있게 살텐데. . . . .
 
깔깔거리며 웃어버려서 진지함을 잃어가는 것 . . . . . .
 
 
어쩌면
이게 늙어가는 사람의 노파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