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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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판단 댓글 0건 조회 844회 작성일 10-01-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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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 집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뜻밖에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 길을 갔는데, 그리고 필요한 것을 갖다 주었음에도 현관문 앞에서 되돌려 보내는 선배가 의아했었고, 섭섭하였고, 인격이 의심된다고까지 판단해 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선배가 술을 마시더니 미안하다며 깊은 사과를 하였다.
 
충분히 친한 때가 아니어서 자폐아 자녀가 있음을 보여주기 싫었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아이를 키우며 겪는 고충을 말하는데 어미인 우리는 함께 울었다. 현상만을 보고 즉각적인 판단을 해 버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최근에 ‘판단의 보류’라는 신선한 용어를 접하였다. 사물에 대한 정의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단순히 한두 박자 늦춘 시기적 연장을 통해서만이라도 크고 새로운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를 삶 가운데 실제 적용해 보았을 때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거의 예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매번 체험하였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 자체가 카리스마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나 인간관계에서 이 ‘판단의 보류’ 이론을 적용해 보려 애쓰고 있다.
 
 마치 ‘중용(中庸)’이 높고 낮음의 가운데쯤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위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위치가 불쑥 튀어 올라온 현격한 높이 차이를 갖는
 
 최상의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듯 성급하고 섣부른 판단에 따른 오류를 상쇄하고도 남을 커다란 그 무엇이 “보류(Reserve)”라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공부를 못 하였기 때문에 그 학교에 갔을 것이라든가, 말이 많은 것으로 보아 가벼운 사람일 것이라든가,
 
자신의 주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회색분자라든가 등의 판단을 잠시 보류하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노력하게 되었다.
 
우리는 때로 미리 판단해 버린 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김흥호 선생은 “현상만을 보는 사람은 꿈속의 나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를 보는 사람에게는 나무는 대지에 똑바로 서 있다”라고 하셨다.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섣부른 판단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는 그 자신만큼만 보게 되고,
 
깨어 있는 사람은 판단을 보류하는 대신 마음을 열어 확보된 공간성과 몸을 열어 얻은 시간성을 합쳐서
 
열린 세계로 성숙과 완성에 가까운 판단의 확장에 다가가지 않을까 한다. 판단 없이, 기억 없이 보고 듣는다면 잘 보고 잘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판단자로, 비평자로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행복해짐을 느낀다.
 
어떤 판단이 마음의 짐을 지우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만 같다. 생각 속에 판단하고 살아가는 삶을 내려놓는 순간 평화가 밀려올 것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래,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라고 하지 않는가. 어이 친구,
 
답 달지 말고 판단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