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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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치의 계절 댓글 0건 조회 1,292회 작성일 10-02-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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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난 2일 시·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6·2 지방선거’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설 명절을 앞두고 지역 민심을 잡으려는 정치권과 출사표를 던진 이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설날 밥상에는 떡국과 함께 출마자들에 대한 촌평이 오를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 임기 한가운데 치러져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나 다름없는 데다, 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 주도권은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권력지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야 모두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의 표심을 잡을 만한 공약은 보이지 않고, 지방자치를 위협하는 중앙정치의 망령이 되레 선거판을 뒤흔들 조짐이다.
 
낡아빠진 정쟁과 집안싸움에다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과 줄서기가 감지되고, 수억원대의 공천헌금설이 솔솔 흘러나온다.
 
 이런 구태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두려운 것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실망과 혐오감으로 인한 유권자의 이탈이다.

70%대였던 대선 투표율이 2007년 63%로 떨어졌고, 60% 내외이던 총선 투표율도 2008년 46.1%로 급격히 하락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51.6%로 겨우 절반을 넘었지만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더욱 장담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여덟 번을 기표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참여도는 더 낮아지고,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과는 무관한 ‘묻지마 투표’가 될 공산도 크다.
 
문제는 이런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투표율 하락이야말로 민주사회의 근본적 위기라는 것이다. 주권행사의 포기는 곧 풀뿌리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물론 위기의 일차적 진원지는 정치권이다.
 
실업자는 늘어가고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악화되는데 거시적인 경제지표 상승에 우쭐하며 ‘중도실용’ ‘친서민’을 되뇌는 정부와 거대여당. 경제 파탄과 무능력으로 MB 정권과
 
 한나라당에 압승을 안겨주고도 자성은커녕 이슈 한 번 선점하지 못한 채 상대의 실정과 ‘반(反)MB’에 기대어 연명하는 제1야당.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을 가려내는 경기에 부대껴온 유권자로서는 신물이 날 만도 하다.

이런 판국에 지리멸렬했던 진보개혁세력의 연대 논의는 그들의 공과(功過)를 차치하고라도 선거판을 떠났던 유권자들을 불러 모을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그마저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 보인다.
 
성패의 열쇠를 쥔 민주당이 하찮은 기득권에 연연해 이를 무산시킨다면 이번 선거의 흥행 참패도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 제자인 자공이 “현재 정치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묻자 공자는 경멸하는 어투로 “도량이 협소하고 식견이 천박한 이들이니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인들은 거기에 도덕성마저 없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를 방관하고 침묵하는 유권자가 늘어나면 게임의 룰도 승부도 결코 달라질 수 없다.

낮은 투표율이 불러온 불행한 결과 중 하나는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다.
 
MB 정부의 교육정책이 촛불집회의 의제로 맹공을 받던 그해 여름,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던 주경복 후보가 25개 자치구 중 17개 지역에서 승리하고도 근소한 표차로 패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고른 지지를 받고도 고배를 마신 것은 그가 우세했던 지역들의 낮은 투표율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정택 후보를 지지하는 강남 3구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율과 몰표 때문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한 공정택 교육감과 꼬리를 물고 터지는 서울시교육청의 비리를 보면서 강남의 유권자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할지는 그들의 몫으로 남겨 두자.
 
 중요한 것은 주권행사를 포기한 여타 지역의 유권자들에게는 분노할 자격도, 비난할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선거사범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그러나 자진리콜이 없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후보자를 가려내 심판하는 것은 유권자인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소중한 주권 행사를 통해 민심을 이반하고 정당과 정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후보자는 필히 낙선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정치적 구호만 난무한 ‘바람의 선거’를 ‘정책 선거’로 정착시키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지방선거의 주권이 처절한 투쟁 끝에 얻어진 민주화의 산물이라는 것도 기억하자.
 
선의(善意)를 가진 유권자들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결국 정치와 세상을 바꾸는 마지막 희망이자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