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때 경험했던 민망한 기억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저녁상을 물린 식구들이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도 TV 옆에서 놀이판을 벌였다. TV에서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중인 모 지상파 방송국의 주말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평소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지만, 드라마 내용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식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화면을 응시해야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야한 속옷 차림의 부부가 진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흘렀다. 곧 베드신으로 이어질 야릇한 분위기였다. 순간 절로 내 고개는 옆으로 돌아갔다. 다른 식구들도 시선 처리에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에는 오싹함이 엄습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더 이상 고개를 돌려야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휴~우'.

TV를 시청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전원을 급하게 꺼버려야 하는 '아찔한 경험'을 해 본게 적지 않을 것이다.

미뤄 짐작컨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자녀들과 함께였다면 충격의 정도가 훨씬 컸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성인물을 주로 방영하는 채널과 아이들이 선호하는 채널의 번호를 일일이 외워서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선정적인 장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다 보니 가족과 함께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본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폭력성은 또 어떤가. 선홍색 피로 얼룩져 고통을 호소하는 격투기 선수들의 일그러진 얼굴. 끔찍하거나 아슬아슬한 각종 사건·사고만을 골라 내보내는 프로그램들. 여기에 더해 친절(?)하게 범죄를 재연한 프로그램까지.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와 게임은 제외하더라도 TV 속에는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묻고 싶다. TV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꼭 그렇게 표현하고 묘사해야 시청자들에게 의미전달을 할 수 있나? 화면 구석에 시청가능 연령만 표기하면 충분한가? TV가 가진 영향력을 어느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선정성과 폭력성을 가늠하는데 개인차가 있다지만, 정말 '이건 아니잖아~'.

오는 10월부터 아침시간에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방송을 제한하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현재 평일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인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가 오전 7∼9시에 추가로 적용된다. 토요일과 공휴일, 방학기간에는 적용시간이 오전 7시로 앞당겨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올해 이른바 '막말', '막장' 방송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심의를 벌여나갈 계획이란다.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건강한 방송 풍토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TV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걸러내겠다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과정에서 적지않은 시비와 논란이 예상된다.

혹시나 심의가 검열로 둔갑되는 등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돼서는 곤란하겠다. 바라는 것은 온가족이 함께 모여 마음놓고 TV를 시청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평범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소박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