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을 보면 예년과 다른 현상이 발견된다. 대학의 유명세만 좇는 추세에서 학과와 교수를 보고 대학을 지원하는 학과중심의 서구식 경향을 말한다. 큰 물결은 아니지만 분명하고 뚜렷하다.
일류대학에 들어갈 만한 학생들이 수준을 낮추어 대학을 지원할 때에는 대체로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보고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요즘엔 미래만 보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수험생들이 경쟁력 있는 학과, 특히 스타교수가 있는 학과에 목숨 걸고 덤비는 것을 보면 그들이 대학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
학과중심 지원은 선진국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입시현상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대학입시에서도 나타나 입시지형을 바꾸고 있다.
대학들도 이런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눈치다. 4∼5년 전부터 대학 특성화란 이름으로 시작된 큰 덩어리가 '학과별 경쟁'으로 다시 변환되고 있다.
학과 전체에 골고루 나누어 주고 대학 전체를 균형성 있게 발전시키는 전략에서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특정학과에 몰아주고 투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는 좀 과하게 이야기해서 발전 가능성이 부족한 학과는 멸문시키고 미래가 창창한 학과만 적극적으로 살리자는 의미다.
사실 학과별 경쟁은 그동안 대부분의 대학이 방치해 왔다. 그러나 일부 대학은 수 년 전부터 이에 대비해 왔다. 어떤 대학은 'G2 N6' 즉, 글로벌 수준 2개 학과, 국내 최고 수준 6개 학과를 목표로 내세우고, 학과간 경쟁시대를 열었다.
또 어떤 대학은 학과평가 공개를 통해 지원을 차등화하고 학과별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어떤 대학은 교수 강의평가에 따라 특정학과를 키운다. 그렇지 못한 학과는 통폐합하거나 아예 문을 닫게 하고 있다.
학과 별 경쟁주의가 대학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는 느낌이다. 들불처럼 번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학과경쟁 유도에 적극이다. 종전에 연구능력 좋은 대학에만 몰아주던 방침을 '잘 가르치는 대학'에도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잘 가르치는 학과별 경쟁'도 연구능력 향상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잘 가르치는 대학에 매년 30억원씩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과거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발상이다.
그러면 대학도 정부도 왜 때늦게 학과별 경쟁시대를 선언하고 야단법석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도 국가도 세계시장에서 제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대학들의 위치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대학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따라서 현재의 대학 경쟁력으로 앞으로도 국가경쟁력을 부족함 없이 떠받칠 수 있는가.
우리의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서있다. 정신문화를 그것에 상응하도록 펼쳐나갈 수 있게 학생을 잘 가르쳐 낼 수 있느냐 하는 것 등 숱한 숙제를 안고 있다. 학과별 경쟁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더있다.
좀 창피한 이야기 같지만, 각 대학들의 학과별 교과과정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학과에 편성한 과목들을 살펴보면 시대와 동떨어지고 거의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이론과 학문도 보인다.
10년된 노트를 리모델링 없이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전공과목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학생들이 기업에 취업한다 해도 그렇게 배워서야 제 구실을 하겠는가.
솔직히 과거에는 교과과정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잘 몰랐다. 그런데 인터넷 덕분에 허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적당한 교과과정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시대 자체가 졸업생들에게 국가경제와 국제수준에 어울리는 실력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이 학과의 경쟁력과 교수의 실력을 보고 대학을 지원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이를 소화 못하면 그 해당학과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대학도 문 닫아야 한다.
좋은 교과과정으로 편성한 학과경쟁력을 내놓고 수험생에게 권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엉성한 상품을 내놓고 사라고 하면 어느 누가 사겠는가. 수험생들이 대학유명세보다 '경쟁력 있는 학과'를 선호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