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화두를 던지고 떠난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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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소유 댓글 0건 조회 713회 작성일 10-03-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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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 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무소유’였다. 그 흔한 관도, 상여도, 만장도, 이렇다 할 장례의식도 없었다.
 
수의조차 마다하고 입던 승복 차림 그대로 대나무 평상에 누워 전남 순천 송광사 전통 다비장에서 간소하게 습골의식을 치렀다.
 
유골은 49재 이후 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울 길상사와 출가 전 본사인 송광사 불일암,
그리고 강원도의 한 토굴에 산골하게 된다.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지만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가늠키 어려울 만큼 크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킨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큰어른이었다. 그는 오두막 편지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말 그대로였다.
 
1976년에 출간한 저서 ‘무소유’는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검소하며 단순한 삶을 권하는 내용으로 스님의 대표작이 됐다.
 
스님은 ‘베풂’보다는 ‘나눔’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도움을 주고도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다 조용히 갔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기원했다.

스님은 입적 직전 “내게 남은 것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며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종교 간 화합에도 기여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길상사 법회에 초대하고 답례로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강론에서 그는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하나가 필요하면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고 설파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모든 출판물 절판을 당부했을 정도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늘 강조했고 자신도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종교의 차이를 떠나 이 시대의 큰어른이었던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을 잃은 것은 큰 슬픔이며 손실이다.
 
그러나 두 어른의 무소유와 아름다운 인간애의 실천정신은 영원히 살아 위선과 탐욕이 넘치는 이승의 바른 길잡이가 될 것이다.
 
법정의 상좌 덕현 스님 말처럼 그가 남긴 참뜻은 다비의 불길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火中生蓮) 이 세상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