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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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실 댓글 0건 조회 808회 작성일 10-03-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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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산업사회라 불리는 오늘날 사상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윤리와 규범에 관한 논의이다.
 
그것은 다만 도덕적이거나 착한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근대가 과잉으로 작동하는 현재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의 관계 맺음에 관한 담론이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환경윤리나 경제윤리는 물론,
생명과학 시대의 생명윤리, 학문윤리 등의 문제와 그에 따른 규범은 이 시대를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총수로서 그저 해 본 말은 아닐 테니 나무랄 데 없는 시대 이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리규범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명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도덕을 말하는 이의 윤리와 규범이 해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윤리적 선언은 겉꾸밈에 지나지 않거나 잘못된 사회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윤리적 선언은 거시적 구조의 악에 맞서 싸우기보다 편리한 개인의 도덕으로 후퇴함으로써 오히려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선언이 진정성을 지니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윤리적 허무감만 초래할 수도 있다.

둘째, 윤리규범은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해명 없이 적용될 때 개인의 도덕이 올바르게 기능하지 않거나, 심지어 악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도덕적이었으며 규범에 충실했던 나치 수용소의 아이히만이 왜곡된 구조에서
 
얼마나 무서운 죽음의 사자일 수 있는지 밝힌 한나 아렌트의 분석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기에 윤리학은 도덕을 넘어 이러한 맥락에 대해 사유한다.

이 전 회장의 발언이 진정성을 지니고, 올바르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이 해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5%가 넘지 않는 소유지분으로 매출 200조원이 넘는 초일류 기업을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어떻게 60여억원 정도의 돈으로 이런 기업을 상속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직함이다. 삼성 X파일 사건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종업원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윤리적 맥락은 무엇일까.
 
노동3권이 삼성만을 비켜가는 일은 어떤 윤리 규범에 따른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태안반도의 기름 유출사건이 오염사고 극복의 문제로 축소되고, 원인과 책임에 대한 논란이 침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회의 역기능 가운데 하나는 드러난 말이 사실과 상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경제만능 성공제일의 신화에 젖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생명의 터전을 철저히 파괴하면서도 굳이 “살리기”로 포장하는 4대강 사업,
 
계층 양극화로 치닫는 경제성장이란 헛된 말들, 자의적으로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법치라고 우기는 행태,
 
언론에 대한 무차별적 통제를 선진화로 포장하는 행동은 부정직함의 극치이며 진실을 감추는 행위일 뿐이다.

진실이 무너지고, 윤리규범이 파괴될 때 그 사회는 결국 해체되고 만다.
그때 어떠한 화려한 성공도 살아남지 못한다.
 
 경제적 성공만으로 한 사회나 국가가 유지된 예는 없다.
역사의 교훈을 우습게 보지 말라.
 
진부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문제다. 규범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다.
 
 그것은 사익과 경제만능의 신화는 물론, 공공성과 진실을 보지 못하는 집단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진실과 정직을 지니고 있는가. 공공성이란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