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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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 정치 댓글 0건 조회 837회 작성일 10-03-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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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봉은사가 정쟁의 빌미가 된 작금의 형국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곳 주지의 주장대로 문제의 절이 최근 조계종 총무원의 직영사찰로 결정된 배경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돌출되는 또 다른 형태의 종교논란이라는 점에서 결코 간단하게 치부할 사안은 아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현 정권에는 껄끄러운 존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마자 사찰앞에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영결식에선 예상을 깨고 직접 불교의례를 집전했는가 하면
 
용산참사와 관련해선 누구보다도 유가족측을 대변했다. 그 이전에도 사찰운영에 많은 개혁적인 변화를 가져와 불교계의 노무현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이런 전후관계를 따져보더라도 이번 봉은사 논란은 사실 여부를 떠나 어쩔 수 없이 강한 정치색을 띤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국가운영에 있어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종교적인 갈등이다.
 
MB의 이른바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현 정권의 종교편향시비가 심각하게 불거진 이후로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국정의 최대 변수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과거에도 종교로 인한 논란은 늘 있어 왔고 특히 국가적 현안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절엔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메카가 됐고 위기 때마다 종교인의 말 한마디는 곧 국민적인 길잡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란은 '종교'라는 한 울타리를 벗어난 종교간 혹은 교파(敎派)간 갈등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곧 국가의 정체성 시비로 비화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지난 12일엔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사업의 전면 반대를 성명으로 발표했고 얼마전 불교계는 축구시합에서 선수들이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골 세리머니를 문제삼고 나왔다.

종교와 정치가 지나치게 유착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이미 역사는 이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가톨릭 국가들의 예루살렘 성지 탈환이 목적이던 십자군 전쟁이 무려 두 세기 동안 유럽을 유린()한 것도 종교가 정치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처음 순수했던 종교적 신념이 교황은 교황권을 강화하고 영주는 영토확장을 노리는 정치논리에 매몰됨으로써 전쟁의 목적 자체가 변질된 것이다.

이렇듯 종교가 정치에, 혹은 정치가 종교에 대한 간여(干與)의 정도를 높이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탈레반같은 아주 극단적인 교조주의도 처음엔 이런 식으로 시작됐다.

우리에겐 그럴 염려는 없지만 지금처럼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상실감을 내재시키고 그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결국엔 나라 전체의 통합만 깨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선진 민주국가들이 '제정분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말은 아니지만 종교 간 갈등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마치 상수(常數)와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같은 종파나 계파 간에도 툭하면 갈라지고 대립하는 현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을 제도적 혹은 정책적으로 위무해도 부족한 판에 오히려 부추긴다면 이보다 더한 어리석음도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무슨 지연 혈연 학연이니 하는 것들로 번번히 국가적 경쟁력을 훼손하는 판인데 여기에 '종교연'까지 가세한다면 나라꼴이 되겠는가.

종교의 가장 순수함은 역시 '낮은 데로 임하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고래등 같은 사찰은 물론 마치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어마어마한 교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현실에 뜻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커지는 시점에서 아예 종교와 정치의 구분까지 애매모호해진다면 우리로선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