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의 6가지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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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TX 댓글 0건 조회 841회 작성일 10-04-0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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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고속열차는 우리나라에선 최고의 열차다.
 
무궁화, 새마을호보다 요금도 엄청 더 비싸고 속도는 물론, 객실 인테리어도 훨씬 부(富)티 나고 고급스럽다.
 
그런 만큼 승객들의 수준도 나름 소득이 높고 어느 정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주로 탄다.
 
증기기관차 시절 객실 안에서 술주정이나 추태를 부리던 교양 없는 건달 승객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성숙되고 수준 있는 국민이 타는 소득 2만 달러 나라의 고급 열차로 자리매김해도 별 이견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 좋은 열차를 탈 때마다 아프리카 미개국 오지(奧地) 철길을 달리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객차 시설이 초라하다거나 창밖 풍광이 뭣해서가 아니다.

 

객실 안내방송이 손님의 수준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 같은 황당함에다 행여 옆자리 외국인 승객이 내용을 묻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조바심이 나는 방송 '멘트' 때문이다.

 

특실쯤 타려면 이런저런 우대 할인을 받아도 왕복 8만~10여만 원 가까운 돈을 내는 승객들을 유치원 예비 입학생 다루듯 하는 객차 내 방송 멘트는 대충 이런 것들이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해주시거나 객차 내 통로를 이용해 주시고’ ‘어린이가 객차 내에 돌아다니지 않게 보살피시고’ ‘금연해 주시고’ ‘휴지는 이래저래 하시고’ ‘큰소리로 떠들거나 옆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해주시고’…

 

오며 가며 듣다 보면 손님을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스트레스 받기 딱 맞는 잔소리들이다.

 

도대체 고등교육 수학률이 90%에 육박하는 OECD 국가의 최고 등급 열차의 객차 안내에서 휴지 버리기나 큰소리로 안 떠들기,

 

휴대폰 진동으로 바꾸기 따위의 주문이 튀어나오는 건 뭔가 한참 잘못된 계도(啓導)다.

 

KTX는 질 높은 교통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공기업이다. 일종의 열차와 철로를 자산으로 장사하는 조직이지 도덕 공부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KTX 사장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나 교장선생님은 아니라는 얘기다.

 

덮어놓고 듣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경부선 철로 처음 깔아놓고 식민지 조선인들 검문하며 가르치려 들던 일본 헌병대 시절도 아닌데 왜 일방적 금지 사항을 지시받듯 듣고 있어야 하느냐는 불만 아닌 불만이다.

 

큰소리로 떠드는 거나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잔소리 규칙 같은 건 요즘 애들 수준으로 치면 어린이집에서 다 마스터해야 할 기초 생활 규칙이다.

 

왕복 10만 원짜리 열차 타고 다니는 어른들에게 차 탈 때마다 들려줘야 할 국민 훈시 거리는 아닌 것이다.

 

 개통 당시부터 프랑스 TGV가 오래전에 내버리다시피 한 구닥다리 모델을 가져와 수년간 온 국민을 불편하게 한 죄도 가볍지 않은 판에 운영에서조차 쪼잔한 잔소리나 해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역방향 좌석도 없애고 좌석 간격도 넓히는 서비스 개선이 됐으니 이참에 화통기차 시절에나 걸맞던 ‘잔소리 서비스’는 고치는 게 맞다.

 

물론 KTX 쪽은 열차 잔소리를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느냐’고 할 것이다.

 

 그래서 덧붙인다면 학교나 가정에서도 영어 가르치는 욕심의 반(半)의반만이라도 기초 예절 교육 좀 제대로 시켜서 사회에 내보내자는 자성(自省)을 지적한다.

 

대기업 CEO들도 대졸 신입사원에게 회사 화장실 깨끗이 쓰기나 휴지, 꽁초 버리기 재교육시키는 비용이 억대가 넘는다는 불평을 한다.

 

도대체 가정은 물론이고 초`중`고`대학`군대에서 기초생활 예절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다.

 

KTX의 잔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KTX만 나무랄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초 생활 교육 시스템이 근본부터 일그러져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例證)이다.

 

 열차 껍질만 요란스레 치장하고 객차 안에선 수준 이하의 잔소리를 들어도 싼 수준에 머문다면 소득이 3만 달러가 돼도 돼지가 진주 목걸이를 한 거나 다를 게 없다.

 

 

KTX 객차 안에서 6가지 잔소리만 사라져도 이 사회의 기초 질서는 절반은 성공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