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신중히, 입은 무겁게 몸만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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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입은 무겁게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10-04-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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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원인 모를 급성통증으로 드러누웠다 치자.
당장 아픈 곳과 원인을 찾아내려면 서둘러 용한 수의사부터 불러다 원인을 찾아내고,
 
처방을 내려 치료를 하고 다음 또다시 재발이 안 되도록 조치해야 하는 게 코끼리 고치기의 순서다.
 
그런데 수의사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기둥인 것 같다’고 했다가 금세 코를 쥐고 ‘방망이 같다’며 말을 바꾸고 또 다른 수의사는 귀를 잡고 ‘물렁한 가죽 같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거기다 구경꾼들까지 나서 ‘저 수의사 말이 맞아’ ‘아니야. 이쪽 수의사 진단이 맞는 것 같아’ ‘둘 다 엉터리야.
 
누군가 독약을 먹여서 아픈 건데 알고도 쉬쉬 딴청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며 루머와 괴담을 쑥덕대고 있으면 병은 병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코끼리만 고통스럽게 된다.
 
천안함 침몰 이후 해군, 청와대, 국회 정치인들과 언론, 인터넷 누리꾼들이 보여주고 있는 총체적 그림이다.
 
사건 발생 초기, 정부가 ‘북한 개입 가능성이 낮다’는 진단을 내렸을 때 국방부는 입을 다물었었다 그러다 뒤늦게 ‘북한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며 북한 공격 가능성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배는 높은 파도에 의해 두 동강 날 수도 있다’는 진단서까지 뗐다. 그리고 며칠 지나자 다시 진단서 내용이 달라지면서 ‘어뢰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란 새로운 진단서를 끊었다.
 
침몰 직후 다른 함정이 (속초함) 공격 후 도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따라가며 5분간이나 함포 사격을 했던 사실도 사건 초기에는 숨겨져 있었다. 뒤늦게 사격 사실이 드러나자 ‘새떼를 오인해서 사격했다’고 해명했다.
 
왔다갔다 코끼리 만지기식 발표가 반복되다 보니 국민과 누리꾼들이 당국의 진단서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속초함엔 하늘을 나는 물체를 추적하는 대공(對空) 레이더가 아예 없다고 했다.
 
새들이 낮게 날아가서 그랬다는 ‘새떼 진단서’에 누리꾼들은 새들이 높은 하늘을 두고 왜 하필 거센 밤바다의 파도 위로 낮게 날아갔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는다.
 
그리고 이어서 갖가지 루머를 만들어 냈다. ‘한`미 훈련 중 아군끼리의 오폭이다’느니 ‘6`2선거 앞두고 보수층 표 모으려고 만든 자작극’이란 악성루머가 그렇다.
 
유언비어란 공식 정보 채널이 막히거나 오락가락하고 숨기려 든다는 인상을 줄 때 생겨난다.
 
사고 후 10일 가까이 원인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마추어도 상상할 수 있는 추측성 발표만 자꾸 쏟아내니 고약한 루머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당국끼리 서로 엇갈린 발표들을 내보내고 묻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바람에 오히려 루머를 확산시킨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적하고 싶다. 왜 심야 바다 속에서 수분 만에 일어난 사고, 그것도 남`북 국제문제가 연계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배가 아직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상황에서 어설픈 진단서만 쫓기듯 계속 내놓느냐는 거다.
 
 또 이 와중에 야당 국회의원은 무슨 근거로 ‘북한 개입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떠드는가. 보았는가, 만져 봤는가. 참 어설픈 나라요, 한심스런 사람들이다.
 
진단이 좀 늦으면 어떤가. 시급한 것은 인양과 구조다. 배를 끌어올려 보면 어뢰인지 내부 폭발인지 암초인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왜 배는 보이지도 않는 바다 속에 둔 채 여기저기 이 입 저 입으로 코끼리 만지듯 서로 간에 민심만 흉흉하게 만드는가.
 
 그처럼 여기저기서 성급히 다그치니까 한주호 준위가 애석한 순국을 하고 민간인 선원이 9명씩 희생당하는 어이없는 일들만 더 겹치는 것이다.
 
금 정부 당국이나 군, 여`야 정치권은 실종 장병 가족들의 아픔과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머리는 신중히, 입은 무겁게 몸만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다.
 
더 이상 코끼리 만지기식 진단은 삼가야 한다.
 
침몰 원인이 응징의 전쟁이라도 치러야 할 원인으로 드러난다 해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
 
일단 더 이상의 루머는 잠재우고 침착하게 인양부터 기다리자.
그것이 제대로 된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