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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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가 댓글 0건 조회 741회 작성일 10-04-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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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국회의원, 검사. 한 지역의 최고 권력자들이다. 여기에 경찰서장과 세무서장을 더하면 로컬 파워엘리트가 망라되는 것이다.
 
더 추가한다면 그 지역을 주름잡는 조폭두목을 빠뜨릴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이 자가 나머지 다섯을 능가하는 지역의 최고 실세일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지방에서 주민들의 생활과 행복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들이 제대로 된 감시자가 없어 각자, 혹은 연대해서 비리를 저지르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것이 토착비리다. 국가적 차원에서 토착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한 (작년 8.15 경축사) 것도 지방권력의 폐해가 너무 깊고 널리 펴져있기 때문이다.

토착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의 비리를 멀리하고 감시해야 할 피감시자와 감시자가 함께 계속 비리의 주역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막을 방법이 없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긴 격이니까.

중앙에서는 그게 어렵다.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고 경쟁이 비교적 공정하게 진행되어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서울시가 전국에서 청렴도가 가장 높게 나오는 것은 시장의 정책철학도 작용했겠지만, 모든 행정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는 데다, 시정의 주역들도 전국 각지에서 온 인재들이라서 섹트(sect)가 형성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구 단위, 시.군 단위로 내려가면 달라진다. 속된 말로 끼리끼리 해먹기가 여간 수월한 게 아니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이 구청장 군수 시장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농지역은 市라고 해봤자 기껏 인구 20만 내외의 규모로 서울의 일개 구의 3분지 1정도이다. 여기서는 그 지역에서 역사가 제일 오래된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공직을 ‘말아 먹는’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에서부터 주사까지 동문회나 다름없다. 관청만 그런 게 아니라 지역상권, 시민단체, 문화단체를 모두 고교 동문회가 움직이다시피 한다.

당연히 엄청 큰 비리가 발생해도 말이 안 나온다. 동창끼리 입 싹 씻으면 증거를 잡기가 어렵다. 외부에서 제대로 된 똑똑한 직원이 와도 금방 왕따 당한다.
 
입학년도를 뛰어넘어 선배보다 먼저 승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이러니 모두가 시장한테 줄을 서는 ‘졸개’들이 안될 수가 없다. 시장출마도 동창회에서 조율할 정도라고 한다.

부산 발 ‘검사와 스폰서’ 스캔들을 지역 토착비리의 전형이라고들 말한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환경 파수꾼인 검사는 토호 권력과 맞서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데, 그 역할을 등한히 한 사례이다.
 
검사 입장에선 나름대로 토착세력과 어울리지 않을 수 없는 나름대로의 고민도 있을 것이고,
 
 정보를 얻기 위해 지역정보의 중심인 그들과 가깝게 지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리도 상당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약도 잘 써야 병을 다스리는데 너무 과도하면 몸을 상하게 하는 법. 회식이나 술자리를 갖고,
 
가끔 2차 나가고 하는 게 반복되다 보면, 목적과 수단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에 이른다.

‘검사와 스폰서’ 관계는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지난 22일 감사원이 발표한 지역 비리에 비하면 사실 비리 축에도 못 든다는 인상이다.

감사원의 '지역토착비리 점검 결과'는 우리의 지방자치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체장은 인허가 댓가로 수 억 원짜리 별장을 뇌물로 받거나, 수 억 수 십 억 원을 현금으로 챙겼다.
 
재벌총수를 흉내낸듯, 비서를 통해 10억원대 비자금까지 관리한 군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비리 백화점의 한 코너도 안 된다.
 
밝혀지지 않은 비리가 더 많을 것임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새는 국민혈세가 전국적으로 수천억원 대에서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 민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5번째 지방선거 열기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군수나 도농지역의 시장을 꼭 주민선거로 뽑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격돌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마다 유력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난리가 4년마다 벌어진다.
 
공천장이 곧 당선증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에선 공천을 주는 입장인 그 지역 국회의원에게 줄을 대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얼마 전 군수가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현금 2억 원을 전달하려다 이를 곧바로 되돌려주려는 국회의원 측이 112에 신고하고, 고속도로까지 추격해 돌려주는 액션영화 보는 것 같은 사건이 있었다.
 
군수는 공천을 받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고, 국회의원은 음모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쫓아가 돌려줘야만 했던 정황을 짐작하면 서글픈 우리 지자체 선거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해 돈을 전달한다고 가정해보자. 군수는 우선 어디에선가 그 돈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기재산을 팔아서 만들 걸로 보는 사람은 적다. 지역 내 인허가나 입찰과정 등 지역행정의 수장으로서 가진 권한을 이용해 조성할 거라고 짐작된다. 그 돈이 특별 당비든 공천의 대가이든 마찬가지다.

단체장은 '지역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중앙의 힘은 국토개발 관련 업무 몇 가지 빼고는 힘이 미치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보족한 돈 대주는 금고에 지나지 않는다.

단체장이 자신을 뽑아주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지방 토호세력과 결탁하는 건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을 위한 창의적 행정, 열정적 지방 기업이 나올 수 없다.
 
몇몇이 말아먹다 보니 다 그 밑에서나마 얻어 먹으려고 범죄적 집단행동에 가담하게 된다. 지역 상위층이 싫던 좋던 범죄적 행위에 가담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성된다.

지방 권력기관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에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의 미래가 달려있다.
 
대통령이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긴 했으나, 토착비리 척결은 실현돼야 한다. 감사원 혼자서는 턱도 없다.
 
검찰과 경찰뿐 아니라 정보기관까지 동원해서라도 국가를 살리고 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하다. 그렇게 해도 그 끈질긴 고리가 끊어질지 말지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지방관리와 토호세력의 학정이 민란을 유발하고, 급기야 나라를 망하게까지 했던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국가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