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짜리 세상 주목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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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목받다 댓글 0건 조회 1,019회 작성일 10-06-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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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자신의 곡이 실제 무대에서 연주될 때 무엇보다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달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전민재(23·한국예술종합학교 4년)씨는 그 짜릿함을 12번이나 경험했다.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이번 대회 결선에 진출한 피아니스트 12명이 모두 그의 입상작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표적'(target)을 연주한 것이다.

이 대회는 작곡 부문 수상작을 먼저 발표한 뒤, 기악 부문 결선 진출자들이 의무적으로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전씨는 "그동안 관현악곡을 10곡 가까이 써봤지만 정작 들어볼 기회는 없었는데, 연주자마다 이토록 다양한 색채가 나올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처음 참가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이 대회 작곡 부문 최연소 수상자 기록도 경신했다.

화가인 아버지와 서예가 어머니의 2남 가운데 장남인 전씨는 인문계 고교 1학년 때 자퇴, 홀로 작곡을 공부했던 독학생 출신이다. 6세 때부터 악보를 베껴가면서 공부하기 시작, 7세 때 부모님을 위한 왈츠를 썼던 '음악 영재'였다.
 
모차르트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하루 몇 차례씩 보면서 작곡가 흉내 내기를 즐기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 서태지 같은 인기 가수의 노래도 즐겼지만 15세 때 글루크의 발레 음악 '돈 주앙'을 들은 뒤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느꼈고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1 때 홈스쿨링(home-sch ooling)으로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무척 불안해하셨어요. 하지만 믿어주셨어요. 베토벤, 슈베르트, 라벨 같은 작곡가의 삶이 저에게 모델이자 나침반이 돼줬어요."
 
그는 "라벨은 파리음악원 시절 낙제와 재등록을 반복했고, 32세로 짧은 삶을 마친 슈베르트는 평생 고난으로 가득했다. 이들 작곡가의 삶을 통해 시련을 이기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16세 때인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교가(校歌) 10편을 목관, 금관, 타악기를 위한 편성으로 편곡하면서 처음 국내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식 작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대학 입학 뒤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연세대 작곡과 선후배들과 함께 작곡그룹 '숨'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는 "처음에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으로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작년 발표회에서 플루트 독주곡을 접한 청중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고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그의 한예종 스승인 김성기 교수는 "특정 유파를 강조하지 않고, 음악적 기초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내년 프랑스 유학을 계획한 전씨는 "일본의 현대음악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武滿 徹)처럼 유럽 현대음악의 물줄기를 흡수하면서도 동양의 서정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