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합격’ 강용석, 교도소 수감 아버지 탓 판사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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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녀사냥 댓글 0건 조회 1,109회 작성일 10-07-21 16:2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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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외모와는 달리 강 의원의 성장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가 살던 집은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공동화장실을 쓰는 주택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교도소를 밥 먹듯 들락거렸다. 경기고 3학년 때 MBC ‘장학퀴즈’에 나가 장원을 했고, 그때 받은 장학금으로 서울대 법대에 등록했다. 대학 3학년이던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 공군 법무관을 마치고 예편한 뒤 판사가 되고자 했으나 우수한 사법연수원 성적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목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가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시련은 강 의원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그는 2001년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학생공동대표를 지내고 지적재산권과 정보기술(IT) 전문 변호사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약자들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8년부터 5년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집행위원을 맡으면서 재벌개혁, 소액주주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2001년에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명된 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2000년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소액주주 소송 전문로펌’을 만들어 대우전자 분식회계,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관련 소송을 통해 소액주주 피해 보상을 이끌어냈다. 1998년 지리산 수해로 야영객 30여 명이 사망하자 스스로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변론을 맡았고 결국 국가배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강 의원은 이번 ‘성희롱 발언 의혹’ 사건 외에 과거에도 부적절한 언급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2008년 한나라당 인터넷 홈페이지 ‘한나라 칼럼’ 코너에 ‘섹시한 박근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성희롱 논란을 빚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나뿐 아니라 많은 유부남들이 박근혜의 물구나무 선 모습, 완벽한 아치 모양의 허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오남석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