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黨’과 ‘시알리스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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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340회 작성일 10-08-0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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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손자의 ‘고추’를 만지며 "어이구, 내 강아지 고추 맛있네"라고 했을 때 그걸 성희롱이라고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런 추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같은 어린애 고추라도 학원 강사가 만지면 세상이 시끌시끌하고 국회의원은 고추는 고사하고 입만 잘못 놀려도 금배지가 왔다 갔다 한다.
 
왜 그럴까. 답을 논하기 전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세칭 ‘와이(Y)담(談)’의 1인자로 유명했던 퇴역 교육감님의 해묵은 에피소드다.
 
이분은 어느 자리에서든 처음 듣는 와이담은 잊어버리기 전에 즉석에서 수첩이나 종이쪽지 같은데다 적어두곤 했다.
 
어느 날 또 한 가지 새로운 Y담을 들었다. "여름날 시아버지가 점심 밥상을 받다가 허리를 구부린 며느리의 적삼에서 삐져나온 젖꼭지가 살짝 시아버지 입술 위로 스쳤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이 오해를 하고 ‘아버지 왜 우리 집사람 젖을 먹습니까’ 했다.
 
오히려 난감해 있던 아버지 왈 ‘이놈아 네 녀석은 어릴 때 3년이나 내 마누라 젖 먹어놓고 무슨 소리냐" 했다는 낡은 우스개였다.
 
평소처럼 안 잊어먹으려고 명함 뒤쪽에다 제목만 적었다. ―'며느리 젖'―
그로부터 며칠 뒤 아들 혼사로 사돈댁과 상견례를 하게 됐다.
 
근엄하게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그날 밤 명함을 받아간 사돈 내외가 기절초풍을 했다.
 
시집보낼 딸아이 시아버지 될 사람 그것도 교육감님이란 양반이 명함 뒤에다 ‘며느리 젖’이라고 써놨으니….
 
뒤늦게 사돈 붙잡고 손이야 발이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당대 와이담 1인자 소리 듣던 호쾌한 성격이 인정돼 혼사는 잘 마쳤다나?
 
두 가지 예화(例話)에서 외설 시비의 경계가 어디쯤인가 해답을 끌어내 본다면 성희롱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당사자 간의 신뢰 관계나 우호적 감정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의 손자 고추 만지기가 희롱이 아닌 것은 사랑이 담긴 때문이고, 교육감의 젖꼭지 명함은 외설이나 비속한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신뢰가 믿어지기 때문에 유쾌하게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우는 입만 뻥긋해도 성희롱 시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그런 짓이 한두 번이 아닌데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 관계나 우호적 감성도 못 얻고 있어서다.
 
일부이긴 하지만 평균 수십억 원의 재산을 지니고 있는 계층들이 치열한 의정 활동 대신 여성 비하적인 말 유희나 즐기며
 
노닥거리고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으니 가벼운 유머나 실언도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강 모 의원 발언보다 더 진한 성적 표현들은 초등학교 남녀 동창회에서부터 노`장년 술자리까지 어디서나 통하고 있다. 그래도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이해와 아량이 소통할 수 있는 신뢰가 쌓여있고 우호적 감성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걸핏하면 성희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나라당의 경우, 속된 말로 비아그라라도 먹고 양기(陽氣)가 입으로 올라 그런 거냐는 비아냥이 나오게 돼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오십보백보, 누드 촬영 발언으로 ‘시알리스당’이냐는 역풍을 맞고 있다.
 
여야 간의 성희롱 시비를 새삼 논하는 것은 단순히 성 비하적 발언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가 아니다.
 
서민, 빈곤층은 하루 끼니를 위해 뙤약볕에서 치열하게 생존 투쟁을 하고 있는 판에 가진 계층, 누리는 계층은 한가하게 외설적 패설이나 지껄이며 노닥댄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온전한 중도 민중까지 ‘이놈의 세상, 더러운 ×들 보기 싫어서라도 확 ―해버려라’는 쪽으로 하나 둘 넘어갈까봐 걱정돼서다.
 
아프리카중남미의 좌파 반란군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된다. ‘비아그라당’이 되든 ‘시알리스당’이 되든 그들 몫이다.
 
 그러나 무더위에 힘겨운 백성들 심기는 건드리지 말라.
 
치졸한 성희롱 시비를 정치 논쟁으로 끌고 가 계속 건드리면 민중의 이반과 분노는 더욱 커진다. 건드릴수록 점점 더 커지는 고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