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정의'라 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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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독 댓글 2건 조회 1,933회 작성일 10-08-2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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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정의'라 부르지 말라-(전원책 변호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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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절로 국격國格이 높아질 것 같다. 시중의 장삼이사까지 다들 '정의'를 외쳐대니 어찌 나라의 도덕이 앙양되지 않겠으며 국운이 융성하지 않겠는가. 청문회 석상에도 요즘 한창 팔려나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등장했다. 청문 당사자인 총리 후보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그가 존 롤스나 로버트 노직이 쓴 다른 '정의론'들은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느닷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감명깊었다고까지 한, 총리 후보의 정의는 무엇인지 꽤나 궁금하던 차였다.
 
그런 궁금증은 총리 후보의 이념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왜 굳이 아무 것도 담보되지 않은 무명의 젊은 정치인을 총리로 발탁했는가 하는 대통령에 대한 의문이었다. 선출직이면 나이나 경륜이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총리는 어디까지나 임명직인데다 명색이 행정부의 2인자다. 그런 자리에 무엇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아무런 '크레딧'이 없는 그를 지명하는 도박에 나서도록 한 것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일 터져나오는 의혹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례입학으로 농대에 진학한 후로 그가 보내온 생애는, 솔직히, 나에게는 너무 비정상으로 보였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고 지식을 넓힌 뒤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정치에 나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치만을 목적으로 살아온 인생을 두고, 소장수 아들로서 총리가 되었으니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입지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라는 것도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나는 그 총리후보의 말을 듣고 젊은이들에게 '절대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정의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고 했다. 그가 이틀 동안의 청문회에서 그 동안 해온 말들을 바꾸거나, 가족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대출엔 '가난한 사람은 정치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항변하고, 돈을 빌려준 지인을 총리실 차관 자리에 앉힌 걸 지적하자 '돈을 가까운 사람에게 빌리지 모르는 사람에게 빌리느냐'고 대드는 걸 보다가, 정의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는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정말이지 토하고 싶어졌다. 너도 나도 정의를 부르짖는 지금, 신성한 의회의 그 방에 공허하게 떠돌고 있을 '정의'라는 단어에 나는 왜 구역질을 느끼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이 복잡한 세상을 아둥바둥하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남을 때 묻었다고 욕할 자격도 자신도 없다. 그러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박연차 씨가 돈 줬다는 걸 안 받았다고 하는 건 믿는다 치자. 그렇다면 돈 심부름을 맡은 식당 주인은 왜 청문회에 나와서 떳떳하게 총리 후보에게 덧씌워진 오명을 씻어주지 못하는가. 뉴욕에 가서 하필 그 식당을 꼭 가야만 했다면 그 식당은 정치인들의 무슨 순례지인가. 
 
나는 이런 뇌물 의혹보다도 총리 후보의 뻔한 거짓말들에 더 놀란다. 그는 자신이 밥 하고 빨래를 시키며 부려먹은 가사도우미를 두고 한 달에 한두 번 우편물이나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고 했었다. 아내가 자가용으로 쓴 관용차를 두고도 거짓말을 했다. 문제의 박연차 씨를 처음 안 일시도 틀렸다. 이러니 지사 봉급으로 아내와 아들 딸이 열 번도 넘는 해외여행을 하고도 신용카드는 전혀 쓰지 않고 알뜰하게 재산을 증식했다는 걸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가 뉴욕의 그 식당에 간 것도, 베트남에 박연차씨의 지인과 동행한 것도 전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도 샌델의 '정의론'을 읽었다. 그리고 샌델의 정의가 총리 후보가 '가슴에 담고 살아 온' 정의와는 사뭇 다른 것이라고 믿는다. 롤스와 노직이 쓴 정의론에도 거짓을 정의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를 총리로 인준한다면 의회는 스스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의 임명을 관철하는 여당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정의를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를 포기하지 못 하는 대통령은 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