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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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입신 출세 댓글 0건 조회 1,289회 작성일 10-09-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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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 출세를 뜻하는 등용문(登龍門)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몹시 힘들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여기에는 용문이라는 계곡과 후한(後漢) 때 관리 이응(李膺)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문은 황하 상류에 있는 계곡으로 근처에는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많은 물고기가 오르고자 해도 오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응은 퇴폐 환관에 맞선 정의파 관료로 청렴결백과 꼿꼿한 인물의 상징이었다. 입신양명을 구하는 청년 관리들은 그와 알고 지내거나, 추천받는 것을 귀하게 여겨 이를 등용문이라고 했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 등용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고기가 용이 되거나 이응의 추천을 받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으로도 어려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외교통상부 직원 특채 논란을 봐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퇴한 유명환 장관의 딸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쉽게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뒤를 보면 등용문에 못지않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관인 아버지는 평생 쌓은 명성과 자리를 걸었고, 그 밑의 관료들은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여야 했다. 공채 자격을 바꾸고, 응시 기한 늘리고, 입맛에 맞는 심사위원 골라 점수를 몰아 주는 것은 보통의 심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일만 봐도 온 천지에서 썩은 냄새가 풀풀 난다. 총리, 장관 후보가 비리 의혹으로 줄줄이 낙마하고, 국회의원은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아랫물까지 갈 것 없이 윗물이 아예 시궁창인 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공정 사회를 역설하고 있다. 청와대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공정 사회라고 정의했다.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가 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과거 심심찮게 보이던 ‘개천에서 용 났다’는 뉴스를 본 지가 감감하다.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국민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개천에서는 절대로 용이 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믿지 않는데 청와대만 용이 나도록 하자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말로서는 못할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번드르르한 말에 희롱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