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대로 행, 도인은 소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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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군자 댓글 1건 조회 2,283회 작성일 10-10-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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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學人)시절의 젊은 스님들은 출가의 삶이 세상의 그것과 다른 점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곤 한다.
 
또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서로서로 갈고 닦으며 치열하게 자신들의 길에 매진해 간다.
 
그래서 간혹 소소한 작은 일들이 불꽃 튀는 격렬한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한 번은 ‘군자는 대로 행’이라는 말로 논쟁이 생겼다. 한 스님이 무심코 이 말을 하면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승려는 군자처럼 대로를 가야한다는 취지로 그리 깊은 생각 없이 한 말에 뾰족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스님이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스님들도 토론에 합류하게 되었고,
 
무언가 결말을 내려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논점은 ‘우리가 군자와 같은 사람이냐, 아니냐? 대로 행을 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두 가지로 나누어 졌다.

군자의 뜻을 살펴보면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학식과 덕이 높은 사람’을 뜻한다. 군자와 수행승의 덕목으로 볼 때,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를 찾을 수 있었다.
 
출가자에게는 ‘학식과 덕’보다는 ‘수행과 도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출가자들이 경전과 어록(語錄) 등 글공부를 많이 하지만 그것이 학식을 쌓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세상에 드러나는 덕(德)보다는 안으로 갈무리 하는 도(道)에 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군자의 도가 화단에서 잘 가꾸어지고 피어나는 꽃나무와 같은 것이라면, 수행승의 도는 산과 들에서 이름 없이 피어나는 꽃나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화단에서 자라고 피어나는 화초에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한 송이 야생화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또한 소중한 줄도 안다. 사람들의 의도가 더 많이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화단의 화초들이 가지는 의미라면,
 
자신의 의지와 가치가 더 많이 발휘되는 것이 야생화일 것이다. 그래서 군자의 덕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격식과 절도에서 생겨나고 수행승의 덕은 홀로 사는 자유분방함과 활발함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대로행(大路行)’은 ‘넓고 큰 길을 간다’는 드러난 뜻과 ‘술수를 부리지 않고 원칙을 지킨다’는 숨은 뜻이 있다. 원칙을 지킨다고 하는 뜻에는 대부분 이의가 없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큰 길을 간다는 부분에는 생각들이 달랐다. 큰 길을 가야 한다는 편과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편이 엇비슷했다.
 
안과 밖이 일치하는 것이 좋지만 수행이란 드러내는 것이 아닌 만큼 굳이 큰 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편의 주장이 의외로 강력했다.
 
 ‘대로(大路)란 떳떳하고 당당한 길이지 꼭 모두에게 보여지고 인정받아야 하는 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그 날의 논쟁은 결국 ‘도인(道人)은 소로행(小路行)’이라는 한 마디 말을 만드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이 가면 넓고 큰 길도 좁고 불편하지만, 공명정대한 사람이 가면 굽은 샛길도 더 없이 넓고 편안할 수 있다.
 
드러나거나 숨겨져 있거나 스스로가 먼저 알고 남들도 아는 것이다. 군자라 불리며 큰 길을 가거나,
 
도인이라 불리며 좁은 길을 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 것인가.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이 올바른 제 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