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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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 댓글 2건 조회 923회 작성일 10-12-0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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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퇴장

 

 

  이즘 창 너머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 눈길이 자주 머문다. 수령이 오십 년은 족히 넘은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노랗게 단풍 든 오리발 낙엽이 소슬바람에 맥없이 떨어지고 있다. 입동(立冬)이 지났으니, 달포 뒤쯤이면 맨몸으로 찬바람과 눈보라를 맞아야 하리라. 십여 년의 세월을, 이층 사무실에서 창 밖 두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계절의 순환을 실감해 왔던 터이다.

 은행나무 두 그루는 여남은 발자국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다. 한데 오른편 나무보다 왼쪽의 나무에 더 마음이 쏠린다. 오른편 나무는 단풍 색깔이 깨저분하지만, 왼쪽 나무는 노란 단풍이 선명하고 깔밋하다. 게다가 오른편 나무는 낙엽 지는 게 어쩐지 바동거리는 모습이지만, 왼쪽 나무는 그 고운 잎을 미련 없이 떨군다. 무슨 연유 때문일까.  경사진 땅에 생장 조건이 별다른 데라고는 없어 보이는데.

 같은 수종이라 하더라도 단풍 색깔은 다양하게 물이 들고 해마다 그 질이 다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기온, 습도, 자외선 등 생장의 외부 조건에 따라 다양한 효소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단풍은 평지보다 깊은 산, 강수량이 많은 곳보다는 적은 곳, 음지보다는 양지, 기온의 일교차가 큰 곳에서 더 아름답다. 오염된 도심의 가로수보다 심산유곡의 단풍이 더 아름답지 않던가.

 깨저분한 오른쪽 은행나무를 새삼 바라본다. 어쩌면 단풍의 미추는 외부조건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 속의 뿌리에 그 비결이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만큼 치열하게 살았느냐와 내면의 닦음이 그 색감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어찌 나무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던가.  조용한 삶의 마무리보다 미련과 허욕으로 발버둥치다가 결국 때를 놓쳐 밀려나는 꼴을 자주 목격해 오던 터이다.‘시작할 때’는 아름다웠을지라도, ‘물러날 때’를 선택하지 못해 훗날 이름을 더럽힌 자들이 어찌 한두 사람이랴.

 왼편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이태 전 고국을 떠나 외지로 향한 어느 목자(牧者)의 신선한 모습이 가슴에 젖어든다.  십여 년 전, 그는 신도 수십 명으로 출발하여 어렵게 교회를 일군 목회자다. 충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그의 철저한 소임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찾아드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부러 예배당도 짓지 않고 교회를 이끌어 왔다. 신도 수가 수천 명이 넘게 교세가 확장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교회 건물을 짓지 않았다. 교인들은 건축을 재촉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학교 건물에 더부살이하며 오로지 이웃을 사랑하고 하늘을 찬양할 뿐이었다. 그는 교회를 시작할 때 신도들에게 약속한 바를 실천하고자 했다.

  애초 그는 ‘십 년 동안만 이곳에서 봉사하고 떠나겠다’고 언약을 했다. 또한 헌금의 절반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할 것이라 약속했다. 봉사와 사랑을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기에 교회의 외형과 신도 수보다는 기도와 청빈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이리라.  

 지명(知命)의 나이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외지로 떠날 결심을 한 것이다. 그가 스위스의 가난한 한인 교회로 떠나던 날, 공항에 배웅 나온 사람은 지인(知人) 몇 사람뿐. 십 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교인들의 마지막 배웅과 가족을 위한 약간의 사례금도 매몰차게 뿌리쳤다.

 “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나무는 새순이 돋고 가지가 굵어지며 그러다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요. 하지만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스스로 썩어 갑니다. 태양도 한낮에 온 세상을 밝히지만 저녁에는 서산으로 자신의 몸을 감추며 사라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고 역할을 다했을 때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믿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열매보다 낙엽을, 영광보다 봉사를 자청한 셈이다. 어찌 목회자인들 인간적인 공명이 전혀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욕심을 버리고 그 교회의 자생력을 위해 아름다운 퇴장을 결심했으리라. 또 다른 곳에 씨앗을 뿌리기 위함이 아니었겠는가. 역할을 마친 후 스스로 물러갈 때를 선택한 것이다. 사람은 떠날 때를 알아야 하고, 그때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리라.

  본분과 역할을 다하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정녕 아름답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은 장엄한 노을처럼 아름답다. 노을은 스스로 몸을 태우다가 서산으로 지지만 그 아름다움은 뭇사람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질 않던가.

 

 무욕(無慾)의 목자(牧者).  그가 고국을 떠나기 전 되새겼다는 옛 시(詩)가 가슴에 흐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