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안광남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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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퍼오미 댓글 4건 조회 2,360회 작성일 13-03-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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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안 광남을 보내며

마음이 무너진다.

통곡하는 어머니와 한없이 슬퍼하는 그의 벗들, 억울해 하며 술을 마시는

복지공무원들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왜 이 지경에 이를 동안 아무도 그의 힘이 되어 주지 못했는가?

... 긴 밤 지새며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안 광남.

곱상하게 생긴 후배였다.

청년회 활동을 하였고 노래패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청년회에서 만나 결혼하고 슬하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두었다.

부부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열심히 뛰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한 번도 잃지 않았던 후배였다.

아이가 커갈수록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부를 시작하였다.

9급 공무원이 되었다.

동사무소 복지 업무를 보며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열심히 일하였다.

갈수록 업무가 과중해지면서 이 후배는 수렁에 빠져 버렸다.

사직하면 다시 생활고에, 앞으로 가자니 눈앞이 캄캄한 생활.

결국 차안에 연탄불을 피워두고 삶을 마감하였다.

나이 꽃다운 설흔 다섯.

 

 

그가 남긴 유서다.

일이 많은 것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투덜대는 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분명 배부른 투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인간이기에

뜨거운 피와 따뜻한 살이 도는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공공조직의 제일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머리 일곱 개 달린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

내 모양이 이렇게 서럽고 불쌍하기는 평생 처음이다.

무슨 말로 떠든대도 지금 내 고통을 알아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으레 다 겪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고되고 힘든 자리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열심히 버티라고 말해주겠지.

이 자리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자면 힘이 나는 게 아니라

마구 화가 치솟는다.

부모, 부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깔끔하게 사라져준다면,

적어도 그 순간 내가 진짜 절박했노라고 믿어 줄 것이다.

죽음의 가치와 무게 따위를 재고 싶지는 않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정도를 넘어선 고통이다.

하루하루 숨이 턱에 차도록 버거운 일상을 헤쳐 나가며

머리를 쥐 뜯어가며 시달려온 나날들

무얼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의미도 방향도 잡히지 않는다.

지금의 스트레스 속에서

내일을 꿈꿀 희망조차 완전히 바닥나 버린 걸까.

얼마를 번대도 무엇을 하며 즐긴대도

형편없이 망가져 버린 마음을

짧은 고통 후에 영원한 안식 속으로 잠겨들고 싶다.

살아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줌의 먼지가 되어 떠나간 저세상에선

죽음도 고통도 쾌락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향기롭고 순수한 시간이

지금 내 절망을 위로해 주리라.

한순간만 과감하게 작정하면 된다.

까짓 거 그냥 가버리면 되는 거다.

나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느낄 그 슬픔보다

지금의 내 상황이 훨씬 괴롭다면

과연 이기적인 상상일까?

못하는 만큼 안 되는 만큼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거다.

맞서야 할 일들 앞에 도망쳐 가며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승부 앞에선 당당한 삶이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날 짓누르는 조직과 질서 앞에,

지난 두 명의 죽음을 지들이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오서 내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

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치 정말 힘들다.

값싼 자기연민 자기비하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 정도 일로 뒈지냐 라고 비웃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다.

내가 사라진 다음, 뭔가가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마이너리그에서 박박 기던 열등감 따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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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는 고인이 된 후배의 안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가게 한 절망이었는가?

읽고 또 읽으며 그의 마음이 되어 본다.

하루 종일 단 돈 만원으로 울부짖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배분의 역할을 하는 그는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일과 후부터 그의 일은 시작된다.

하루 일한 내용을 모두 정리해야 하니까.

늦게까지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쌓여 있는 업무의 과중함으로 괴로워했다.

“ 나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

얼마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 없이 일해도 끝나지 않는 과다한 업무.

끊임없이 민원인에게 시달리는 복지업무의 성격.

대선 이후 그 놈의 20만원 때문에 거의 파김치가 되었다.

“ 20만원 안 줍니까?”

“ 정해진 것이 아닌데요.”

“ 준다고 했으면 줘야지.”

“ 죄송합니다.”

대화내용은 점점 커지고 결국 소리 지르고 화내는 상황에 이른다.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의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최악의 근무조건아래

매일 죽음에 이르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동마다 복지 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 업무는 특성상 계속 민원인을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 십년째 복지인력의 충원은 멈춰서 있다.

공무원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업무가 복지 분야이다.

일은 과다하고 대우는 바닥인데 매일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후배의 자살은 구조적 타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며 고통 겪지 않는 공무원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복지 분야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귀여운 아들을 두고 자살이라는 극한 결정을 하기까지

이 후배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롭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적 여론이 모아지길 소망 한다.

이 기회에 전국적으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실태파악과 처우개선, 인원충원에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복지의 확대는 복지 분야 담당자의 확대로 시작해야 한다.

고인이 된 광남이,

부디 그곳에서 평안을 얻기 바란다.

좀 쉬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