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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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함께 살아가기 댓글 0건 조회 930회 작성일 07-03-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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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회식자리가 있었다.
마지막에는 스무명 남짓 되는 스태프들만 남았다. 그 중에 젊은 남성은 단 둘이었다.
 
이 동네는 여자들 세상이라며 툴툴거리던 한 제작사 대표가 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무조건 살아남기만 하면 돼. 이 분야에서 5,6년쯤 버티면 그땐 남자들이 부족해서 무조건 대우받게 될 거야.”
 
요즘 공연계에서 일하려는 젊은이들 중 일고여덟은 여성이다. 이미 현장에서 여성 인력은 양적으로는 주류가 되었다.
 
기획파트는 물론 무대, 조명, 음향 등 무대기술 분야에도 여성 진출이 늘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였지만 ‘살아남기’라는 표현에 입사 당시가 떠올랐다.
 
당시 예술의전당 공채공고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병역필 또는 면제자’.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나 면제받은 사람’이라는 얘기겠지만 당시 통념으로는 ‘남자’를 뽑겠다는 얘기였다.
 
잘 알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니 불쾌함에 울컥해진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사부에 전화를 걸었다. “군대 면제자는 여자도 포함된다는 뜻이죠?”라고 묻자 상대는 뭔가 허를 찔렸는지 당황하는 듯하며 “아, 예, 뭐 그런 거겠죠”라고 적극 부정하지 못했다.
 
운좋게 선발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입사 후 이 얘기를 했더니 한 선배가 “그게 너였구나, 그 전화 내가 받았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선배 말로는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분명 한 마디로 거절했을 거라며 생색을 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막무가내 입사 후 줄곧 쉽게 그만두거나 좌절하지 말자.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어렵게 열어놓은 길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일했다.
 
가끔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여유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니 남자 후배에게 살아남으라는 충고를 하는 극단 대표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
 
우리 사무실은 여인천하로 불린다.
업무로만 평가하지 뭐 그런 데 신경쓰나 싶어 처음엔 기분이 언짢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소리도 즐길 만큼 편안해졌다. 공연계에 여성이 많아져서 좋기도 하고 양성이 함께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인천하 사무실에서 남자후배가 살아남기 위해 여유를 잃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요즘 인기 상한가인 훈남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 같다.
 
고희경(예술의 전당 교육사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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