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의원님 제가'파리 시위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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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교민 댓글 0건 조회 812회 작성일 13-11-18 20:15본문
김진태 의원님 제가'파리 시위자' 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
김진태 의원님, 지면상으로 인사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 수행은 잘 마치고 오셨는지요. 저는 의원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하신 파리 시위자 중 한 명입니다. 청하지도 않은 편지의 수신자가 되게 해서 한편으론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파리 시위자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하신 의원님의 말씀 때문이니 이런저런 반응에도 귀를 기울이셔야 할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김 의원님이 이렇게까지 표현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하긴 저 역시 국가정보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 소식에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에 참가하였으니 우리는 이유는 달라도 서로 단단히 ‘화가 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유감인 것은 단순한 우려나 분노라는 감정이 아니라 의원님의 말씀은 거의 협박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리 시위자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무엇이 그렇게 의원님을 분노하게 합니까? 참가자들의 정체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까? 의원님은 얼마 되지도 않은 참가자들의 정체를 “통진당, 유학생” 등으로 보고 있는데
“국가전복 기도자들”로 보아주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실망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그러한 호칭에조차 전혀 해당되지 않는 사람임을 밝히고 싶습니다.
사진 채증을 근거로 국가정보원에 문의할 것도 없이 단 몇마디 소개로 그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나이 60을 눈앞에 둔 파리 교민, 한 가족의 가장, 학자, 1970년대 대학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는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뚜렷한 ‘업적’도 나타내지 못한 채 심정적으로만 공감해온 시민으로 살아왔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의원님의 인식에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 지난해 12월 선거에 대해 이견을 이야기하려면 통합진보당이어야 하고, 반정부 인사이어야 하고, 젊은 유학생이어야 합니까?
그냥 평범한 사람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걱정해야 할 자격도 없는 것입니까? 훔치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서삼경에 성서·불경·헤겔이 다 동원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통진당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정치적인 행동에 적극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선 긋기를 통해 “심청이를 공양물로 물에 빠뜨리고 나 혼자 살려는 계산에서가 아닙니다.”
그런 식의 호명 정치나 나누기 정치에 동조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고 또한 어떤 소속이 행동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정치가 가장 상식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날 때 가장 평범한 상식만으로도 정당하고 단호한 행동은 충분히 유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파리 시위자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겠다.” 저나 모였던 사람들은 익명으로 숨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비밀장소에 모인 것도 아닙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프랑스 경찰 쪽의 허락을 받아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뭔가 개인적으로나마 의견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차에 마침 집회 계획이 있다는 소식에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기꺼이 참여하였습니다.
참여한 사람들도 개인적으로는 거의 모르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그 때문에 모종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가요?
선거댓글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직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있는데 부정을 규탄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 거요….” 그렇다면 선거부정을 보고도 피가 끓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입니까? 같은 피가 장소에 따라 달리 끓을 수는 없습니다.
파리에 있어도 심장은 똑같은 피가 도는 심장입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반대나 규탄 시위만 하는 것이 교민의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에펠탑을 진동시켰을 때는 같이 가슴이 뛰었고 한국어가, 한식이, 한국영화가 소개될 때는 무한히 자랑스러워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김 의원님, 그런데 도대체 치르게 하겠다는 대가가 뭡니까? 먼 이국땅에서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불이익을 두려워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다시 참담한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판단에 의해 당당하게 참여한 일에, 그것도 불법도 아닌 시민의 권리 주장에 마치 일을 저지르고 꾸중을 두려워해야 하는 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까?
이왕 터진 김에 치러야 할 대가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보다 저는 조국의 경제·문화·정치가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번 박 대통령의 순방은 서구 유럽이 중심이었습니다. 유럽은 오랫동안 우리가 기술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선진국으로 존경해 왔지만 이제 우리는 상호적 동반관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문화와 인권의 수도인 파리에서 한국의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반인권적이고 비정상적인 수준의 발언을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이번 방문의 성과에 오점을 남긴 치명적 실수 아닙니까?
순방외교 동행에 많은 수고가 있었겠지만 의원님이야말로 이번 순방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솔직히 지난번 어떤 교회에서 목사들이 모여 박정희 대통령 추모기도회를 했다는 소식에 화도 나고 부끄러운 나머지 속죄하는 마음이 나를 더 부추긴 탓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런 정도의 참여 때문에 협박을 당하고 뒤탈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국이 민주주의를 이룬 1987년에서도 25년도 넘은 상황에서 다시 이러한 위협을 들어야 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퇴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전근대적인 사고 자체가 민주국가란 위상에 치명적인 상처를 가져올 것이며 더욱 깨어 있는 시민정신으로 대처해야 할 이유를 준다고 하겠습니다.
고덕신 파리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