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문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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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측근 댓글 1건 조회 1,146회 작성일 13-11-25 15:33본문
최측근이며 복심인 비서실장들의 일탈이 잦다. C시, S시 등 그 지역 비서실장의 잇따른 사법처리는 단체장(시장, 군수)에게도 도덕적으로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의 죄명은 뇌물수수 등 혐의다. 따라서 깃털과 몸통론으로까지 회자될 정도다.
혈세를 빼 먹으려는 업체는 물론, 동료인 공무원으로부터도 `검은 돈`을 상납 받는 등 사법 처리된 지역이 3곳에 이르자 부패의 서막이 오른 것 같아 도민들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비서실장을 문고리 권력에 빗댄 것은 그를 통해야만 모든 길이 통하고 이를 통하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게다. 문고리란 말은 문을 걸어 잠그거나 여닫는 손잡이로 문에 다는 고리다. 쇠고리 또는 가죽고리 등 문안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도구에 지나칠 다름이다. 문고리의 이런 뜻을 빗대 생긴 조어가 `문고리 권력`이다. 문고리를 잡고 권력의 핵심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곧, 문지기(Gate Keeper) 권력이다.
문지기 권력은 조직ㆍ집단 등에는 반드시 있다. 결재를 받으려고 해도 비서실과 잘 사귀어 두지 못하면 제때 일처리를 못하는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관계가 껄끄러우면 생고생만 하고 뒷전으로 밀린다. 비서실의 책임자인 비서실장의 월권은 마음먹기에 따라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골탕 먹일 수 있고 인허가 등 온갖 업무를 떡 주무르듯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의 문고리를 자주 잡는 자가 강한 자라는 속담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벼슬 높은 판서보다 임금을 자주 만나는 도승지의 힘이 더 셌다는 것이다. 곧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그런데 왕 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춘대원군` 즉, 흥선대원군에 빗댈 정도이니 대통령 비서실장의 파워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흥선대원군이 누군가. 파락호로 행세하며 왕권을 노린 그는 왕을 대신한 섭정으로 정치를 주도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아들 고종의 즉위로 조선역사상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면서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대원군에 봉해졌다.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섭정을 맡은 당시, 조선은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당파를 초월한 인재등용, 서원철폐, 법률제도 확립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수립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관계가 악화되고 외래문명의 흡수가 늦어지게 됐다.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오개혁 등으로 은퇴와 재집권을 반복했다. 서세동점이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과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던 흥선대원군은 개혁 정치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에 비견될 정도니 대단함을 새삼 절감할 따름이다.
아무튼 최고 권부인 대통령, 그 비서실장에 비할 수는 없지만 단체장들의 비서실장 또한 그 파워가 녹록하지가 않다. 그들 수장(首長)의 권한 범주가 다를 뿐 인ㆍ허가권을 거머쥔 단체장, 지방권력자 또한 관할지역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기에 각계의 로비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문고리 권력`의 일탈, 그들이 청렴과는 먼 거리인 한탕주의에 찌들었다면, 그 공조직은 절대 신뢰 받을 수 없다. 또 미래도 불투명하다. 특히 측근 중용인사는 모든 일을 망치는 망사(亡事)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그릇`은 되지 않는데 충성심에만 눈이 멀어 측근에게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물론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된 `단체장`도 편하지 않을 터, 안타깝지만 비서실장 줄 구속 등 사법처리로 드러난 `머니게임`에 경남도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고대 로마 가도(街道), 그 길도 흥할 때의 칼자루가 칼날로 바뀌면서 쇠락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권력은 뜬구름 같은 것. 당(唐) 태종(太宗)의 신하들의 문답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는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란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보다는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복(福)은 문고리 권력의 보필에 달려있는 것 같다.
혈세를 빼 먹으려는 업체는 물론, 동료인 공무원으로부터도 `검은 돈`을 상납 받는 등 사법 처리된 지역이 3곳에 이르자 부패의 서막이 오른 것 같아 도민들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비서실장을 문고리 권력에 빗댄 것은 그를 통해야만 모든 길이 통하고 이를 통하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게다. 문고리란 말은 문을 걸어 잠그거나 여닫는 손잡이로 문에 다는 고리다. 쇠고리 또는 가죽고리 등 문안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도구에 지나칠 다름이다. 문고리의 이런 뜻을 빗대 생긴 조어가 `문고리 권력`이다. 문고리를 잡고 권력의 핵심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곧, 문지기(Gate Keeper) 권력이다.
문지기 권력은 조직ㆍ집단 등에는 반드시 있다. 결재를 받으려고 해도 비서실과 잘 사귀어 두지 못하면 제때 일처리를 못하는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관계가 껄끄러우면 생고생만 하고 뒷전으로 밀린다. 비서실의 책임자인 비서실장의 월권은 마음먹기에 따라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골탕 먹일 수 있고 인허가 등 온갖 업무를 떡 주무르듯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의 문고리를 자주 잡는 자가 강한 자라는 속담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벼슬 높은 판서보다 임금을 자주 만나는 도승지의 힘이 더 셌다는 것이다. 곧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그런데 왕 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춘대원군` 즉, 흥선대원군에 빗댈 정도이니 대통령 비서실장의 파워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흥선대원군이 누군가. 파락호로 행세하며 왕권을 노린 그는 왕을 대신한 섭정으로 정치를 주도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아들 고종의 즉위로 조선역사상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면서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대원군에 봉해졌다.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섭정을 맡은 당시, 조선은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당파를 초월한 인재등용, 서원철폐, 법률제도 확립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수립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관계가 악화되고 외래문명의 흡수가 늦어지게 됐다.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오개혁 등으로 은퇴와 재집권을 반복했다. 서세동점이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과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던 흥선대원군은 개혁 정치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에 비견될 정도니 대단함을 새삼 절감할 따름이다.
아무튼 최고 권부인 대통령, 그 비서실장에 비할 수는 없지만 단체장들의 비서실장 또한 그 파워가 녹록하지가 않다. 그들 수장(首長)의 권한 범주가 다를 뿐 인ㆍ허가권을 거머쥔 단체장, 지방권력자 또한 관할지역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기에 각계의 로비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문고리 권력`의 일탈, 그들이 청렴과는 먼 거리인 한탕주의에 찌들었다면, 그 공조직은 절대 신뢰 받을 수 없다. 또 미래도 불투명하다. 특히 측근 중용인사는 모든 일을 망치는 망사(亡事)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그릇`은 되지 않는데 충성심에만 눈이 멀어 측근에게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물론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된 `단체장`도 편하지 않을 터, 안타깝지만 비서실장 줄 구속 등 사법처리로 드러난 `머니게임`에 경남도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고대 로마 가도(街道), 그 길도 흥할 때의 칼자루가 칼날로 바뀌면서 쇠락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권력은 뜬구름 같은 것. 당(唐) 태종(太宗)의 신하들의 문답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는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란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보다는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복(福)은 문고리 권력의 보필에 달려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