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나라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반드시 살려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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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월호 댓글 4건 조회 1,560회 작성일 14-04-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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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일보 4.24일자 "정동에서" 컬럼입니다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나라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반드시 살려내는 나라
우리 공무원들이 만들어야 겠지요
위정자나 단체장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는 공무원이 되어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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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외국에서 살까 봐.”

얼마 전 딸아이가 불쑥 꺼낸 말이다. 딸아이는 대학 4학년생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나이다. 이유를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 대학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고, 취업도 어렵고. 엄마 아빠처럼 살 자신이 없어.”

팍팍한 중·고교 과정, 좁은 취업문, 빈부 차, 이런저런 차별…. 딸아이가 겪는 강박감을 ‘철없는 생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태어난 나라, 한국에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그런데 ‘2014년 4월16일’ 내가 믿었던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이런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 등 승객 302명을 침몰하는 여객선에 남겨둔 채 선장과 선원은 제일 먼저 도망쳤다. 눈앞에서 어른들에 의해 사지(死地)에 내몰린 아이들이 하나둘 숨져갔다. 그런데 위로와 희망, 믿음을 주어야 할 ‘어른’과 ‘나라’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여객선을 들어올릴 크레인 선박은 ‘승인이 안 났다’는 이유로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2012년 진수식까지 한 해군의 첨단구조함 ‘통영함’은 ‘장비 작동과 항해 안전상의 문제’를 이유로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 사고발생 1시간이나 지나서야 꾸려진 정부 각 기관의 대책본부는 생명 구조보다는 ‘윗선 보고’를 위해서인지 ‘숫자 맞추기’에 바빴다. 그나마 제대로 된 현황 파악까지 이틀이 걸렸다. 숫자도 제대로 못 센 것이다.

실제로는 30~50명만 수색이 가능한 잠수부 투입 숫자를 “매일 300~500명이 투입된다”고 부풀려 발표했다가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만 키웠다. 리프트백(공기주머니) 등 첨단 장비의 사용도 머뭇댔다. 발생 초기 리프트백이 설치됐더라면, 선박의 침수시간을 늦출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만큼 생명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다. 능력이 없으면 남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텐데, 미국 등 ‘도움을 주겠다’는 나라의 제의도 처음엔 뿌리쳤다.

이뿐인가.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서자, 막아선 경찰은 가족들을 향해 ‘채증’을 하겠다며 동영상 카메라를 들이댔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 새누리당의 한 세종시장 예비후보는 폭탄주 술판을 벌이고, 한 최고위원은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다”며 때 아닌 색깔론을 제기했다. 교육부 장관은 자신의 ‘행차’를 귓속말로 알렸다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어쩌란 말이냐”는 비난을 샀다. 사망자 명단이 적힌 상황판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려다 가족들의 분노를 산 안전행정부 국장도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한 실종자 가족을 ‘악쓰고 욕을 해대는 선동자’로 몰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발뺌’을 했다.

사고 발생 8일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사과’는 않고, ‘질책’만 한다.

가슴이 먹먹하다. 매일 신문과 방송을 타고 전해지는 안타까운 사연을 보면서, 눈물을 훔친다. 어디 나뿐일까. “선장 등 선원이 ‘승객은 모두 밖으로 대피하라’고 방송만 제때 했더라면…” “군이 자랑하는 그 많은 함정, 잠수정과 첨단장비가 사고 발생 직후 바로 투입됐더라면…” “단 1명의 병사,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최전선에 나섰다는 ‘특공대’가 투입됐더라면…” 등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지난 20일 밤. 퇴근길 발걸음이 저절로 단원고등학교로 향했다. 촛불집회가 끝난 뒤였다. 국민들이 흘리고 간 ‘눈물’, 국민들의 소망을 담은 ‘쪽지’들, 그리고 국화꽃…. 단원고 정문에 남아있는 흔적을 보면서 “아이들이 눈앞에서 고통받을 때 우리 어른들은, 나라는 무엇 하나 한 것이 없다”는 사실 앞에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그날, 집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왔어”하고 인사를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네가 아이를 낳아 기를 때면 폭력 없는, 왕따 없는 교실이 될 거야, 성적 때문에 너나 네 아이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거야, 아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될 거야, 네가 힘들 때면 나라가 보듬어 줄 거야, 그리고…,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나라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반드시 살려내는 나라가 될 거야. 그래서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좋겠어”라고.

언제쯤, 이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그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