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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과잉복지병 댓글 1건 조회 939회 작성일 14-05-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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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복지예산 대폭 삭감 추진]

- 호주 자유·국민聯政 개혁 나서
지난 6년간 집권했던 노동당 정권 '퍼주기' 일관하다 재정위기 봉착
사회보장·복지 지출 127조원, 한 해 총지출의 35% 달해
한국 3배인 최저임금, 단계 축소… 개인 부담 늘려 無償진료 개선
노령연금·실업수당 받는 나이 높여… 야당·시민단체 "저소득층만 희생"

김충령 특파원 사진
김충령 특파원
1901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할 때부터 파격적인 복지 제도를 시행해 '세계의 복지 실험실'로 불렸던 복지 국가 호주. 그런데 최근 호주 사회에서는 2015 회계연도(2014년 6월~2015년 5월) 예산안 발표(13일)를 앞두고 '복지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매년 6월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호주에선 5월 중순에 새 예산안을 발표하는데, 토니 애벗 호주 총리가 이끄는 자유·국민 연립 정권은 내년 예산안에서 대대적인 복지 예산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 무상의료, 노인연금, 각종 수당 등 복지 전 분야에 걸쳐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호주 언론은 복지 지출 감축에 대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삭감(cradle-to-grave cuts)'이라 비꼬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는 심각한 재정 적자 때문이다. 정부는 복지 지출 증가로 국가 부채가 2016~2017년엔 4000억호주달러(약 383조원)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연방정부의 총 지출은 3810억호주달러(약 365조원)다. 이 중 사회보장·복지 관련 지출은 1323억8000만호주달러(약 127조원)로 총 지출의 34.71%에 달한다. 의료·교육 분야 지출까지 합치면 58.5%에 육박한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부채가 불어나고 있어 현 수준의 복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재정 적자 촉발한 '과도한 복지' 수술

호주의 정부 여당은 지난 6년간 집권했던 노동당 정권이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퍼주기'를 한 결과 재정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7년 노동당이 집권한 이듬해, 각종 복지 예산이 급증한 여파로 호주 재정이 적자로 돌아섰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2008~2009년엔 경기 부양을 이유로 저소득층 국민 800여만명에게 최대 우리 돈 90만원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수혜자엔 중고생, 해외 거주자도 포함됐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자 노동당은 구멍 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증세를 감행했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9월 자유·국민 연립에 정권을 넘겨줬다.

2013년 호주 정부 총 지출 그래프
새 정부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호주 최저임금부터 손볼 계획이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주당 622호주달러(약 60만원)로 한국의 3배에 이른다. 이를 10년에 걸쳐 488달러로 단계적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주가 고용을 꺼린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실업률이 떨어지면 실업수당 부담도 덜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의료복지도 수술대 위에 오른다. 호주는 일반의(醫) 진찰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 무상(無償)의료가 가장 잘 정착된 나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부는 무상진료라는 '보편적 복지'는 시민들의 모럴해저드를 촉발, 꼭 병원에 반드시 갈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든다고 한다. 조 호키 재무장관은 일례로 시드니의 대표적 부촌 노스시드니가 무료 진료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의료비 부담 증가 폭은 경제성장 폭의 2배를 웃돈다. 호주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앞으론 일반의 진료 시 환자가 개인 부담금을 6~15호주달러 내도록 할 계획이다. 고령화로 인한 노인연금 지급액 급증도 정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호주 정부는 노인연금 수혜 연령도 기존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올릴 방침이다. 현행 22세인 실업수당 신청 개시 연령도 25세로 높이고, 학생·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도 축소·폐지할 예정이다.

야당·시민단체, "저소득층만 희생양 삼는다" 비판

호주 국민들은 경제여건 악화와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비중 감소 등으로 현재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국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전방위 복지 감축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야당인 노동당은 지난해 총선에선 노인연금에 손대지 않겠다고 하더니 선거에서 이긴 후 입장을 바꿨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고소득층에 유리한 세제는 신설하면서 무상의료처럼 저소득층에 꼭 필요한 지원을 줄이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호주의료연합(AMA)은 "환자가 진료비 부담으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결국 병을 키우게 될 것이고 이는 오히려 의료비용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야권은 재정수지 개선을 오직 복지지출 감소를 통해서만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달 정부가 120억호주달러를 들여 신형 전투기 F-35A 58대 도입을 결정한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달 초 실시된 호주 뉴스폴(Newspoll)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총선 당시 46%였던 자유·국민 연립의 지지율은 38%로 추락했다. 하지만 정권의 예산 감축 의지는 확고하다. 조 호키 재무장관은 "복지 축소는 우리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우리는 가진 자산 범위 내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