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공무원 연금’의 오해와 진실
② ‘공무원 연금’을 둘러싼 7대 쟁점
① 국민연금 84만원 vs 공무원연금 229만원이라는데
소득의 4.5% vs 7% 납입…가입기간 같으면 84만원 vs 141만원
② 고위직 연금 과다…공직사회서도 개선 목소리 높아
‘국민연금 가입자가 매달 평균 84만원의 연금을 받을 때,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229만원을 받는다.’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 등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는 쪽에서 단골로 활용하는 통계다.
많이 알려진 ‘평균’ 연금 수급액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먼저 가입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매달 연금보험료를 적게 낸 국민연금 가입자와, 거꾸로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보험료를 낸 공무원연금 가입자를 단순 비교한 수치라는 사실이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출발했다. 국민의 기본적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최소 가입기간인 10년간 매달 정해진 연금보험료를 내면, 65살(2012년까지는 60살)부터 매달 일정한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민연금 수급자 가운데 보험료를 가장 오래 낸 사람은, 제도 도입 첫해에 가입해 지난해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한 사람이다.
가입기간은 햇수로 꼭 25년이다.(2013년 12월 기준)
공무원연금제는 1960년에 도입됐다. 장기간 성실하게 일한 공무원에게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하고, 재직기간에 맡은 직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제도 도입 취지다. 퇴직한 뒤 65살(2009년까지는 60살)부터 공무원연금을 타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은 공무원으로 재직해야 한다. 최장 가입기간은 33년이다. 공무원 생활을 더 오래 해도 연금 가입기간은 33년까지만 인정해준다.
역사가 짧은 탓에 국민연금에 25년 넘게 가입한 사람은 없는 반면, 33년 넘게 재직한 공무원은 많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금액을 살피려면, 적어도 동일한 가입기간을 유지했을 때 얼마를 받는지 따져야 한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최근 여야 국회의원한테 건넨 공무원연금 현황 자료를 보니,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똑같이 20년 이상~25년 미만 자격을 유지했을 때,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액은 각각 월 84만여원, 141만여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월평균 229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가입기간을 따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가입자가 매달 내는 납입액(본인 부담금) 비율이 다르다는 점 역시 평균 연금액을 비교할 때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자신이 한달간 벌어들이는 돈의 4.5%를 낸다.
공무원은 7%다. 한달 세전 총소득이 100만원이라면 일반 국민은 4만5000원을, 공무원은 7만원을 내야 한다.
이밖에도 공무원연금은 퇴직금의 일부와 공직자로서의 직업윤리 준수에 대한 보상을 포함한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84만원 대 공무원연금 229만원’의 단순 비교는 거의 의미없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다만, 일부 고위직 공무원이 퇴직한 뒤 국민연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연금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많은 가입자의 납입액을 저소득층 가입자에게 옮겨주는 ‘소득 재분배’ 방식을 취한다면, 공무원연금은 자신이 낸 만큼 돌려받는 ‘소득비례형’이다.
또 국민연금은 월 소득 상한선을 408만원으로 설정했다.
소득이 아무리 많더라도 낼 수 있는 보험료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이 가운데 일부는 저소득층 연금액으로 쓰인다.
반면 공무원연금의 소득 상한선은 전체 공무원 월평균 소득의 1.8배(805만원)로 높다. 게다가 매달 내는 납입액이 국민연금보다 많은 7%이고, 고소득자라도 자신이 낸 만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고액 연금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매달 3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퇴직 공무원은 6만7550명(18.61%)이다. 대법관 출신 등 10여명의 고위 공직자 출신은 연금으로만 매달 7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
공무원연금 상한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8일 “많은 보수 및 연금을 받는 고위 공직자와 보수 수준이 여전히 높지 않은 대다수 하위직 공무원의 연금을 똑같이 깎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며 “공무원연금 개편은 국민적 눈높이로 볼 때 지나치게 많은 연금액을 받는 고위직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③ 수급자 급증 적자 눈덩이…고령화 따른 대책 마련 시급
④ 연금적자 커진 이유, 정부가 IMF때 기금 전용한 탓도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수입(납입액)보다 지출(지급액)이 많은 적자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2001년부터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정부) 보전금 제도’를 뒀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정이 해마다 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공무원연금 적자가 2조5000억원”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는 공무원연금 보전금은 2017년이면 4조3481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공무원연금 적자폭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연금 수급자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1980년 1763명에 불과했던 공무원연금 수급자는 지난해 36만3017명으로 폭증했다. 평균 수명은 길어지는데다 퇴직 공무원 수까지 많아진 결과다.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 등은 공무원연금 재정 문제의 핵심은 ‘저부담·고급여’ 구조라고 본다.
이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공무원연금의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식 해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견줘 상대적으로 많은 공무원연금 수급액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혈세’로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는 내용이 부각되며 상당수 국민도 ‘(공무원연금) 대폭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쪽 손을 들어주는 형편이다.
반면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살피면 정부의 책임이 더 큰데, 이제 와서 공무원에게 ‘더 내고 덜 받는’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1983~1995년 정부 예산으로 써야 할 공무원 퇴직수당과 사망조위금, 재해부조금을 공무원연금 기금에서 꺼내 썼다. 퇴직수당은 민간기업이 부담하는 퇴직충당금처럼 정부가 내야 할 몫인데, 이를 공무원이 낸 연금 기금으로 지급했으니 명백한 편법이다. 이에 따른 공무원연금 기금 손실액이 1조4425억원에 이른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대규모 공무원 구조조정이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1998~2000년 그만둔 공무원은 21만명에 이른다.
그 결과 연금 지급액이 갑자기 늘어 기금은 1997년 6조2000억원에서 2000년 1조7000억원으로 4조5000억원 줄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어차피 지출돼야 할 연금이 좀더 일찍 지출됐을 뿐”이란 재반론도 있다.
공무원연금 재정악화 논란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도 있다.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제도의 개편은 재정안정성 못지않게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초연금에서 보듯 빈곤 노년층에는 결국 사회적 비용, 즉 세금이 투입된다.
국민연금이 이미 용돈연금 수준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노후보장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공적연금의 틀을 어떻게 재설계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하향평준화를 능사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공무원들의 사용자인 만큼 이들을 위해 어느 정도 재정이 투입되는 건 불가피한데 그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공무원연금 정부부담률’(정부 재정의 공무원연금 및 퇴직수당 기여율)은 낮은 편이다.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그 비율이 각각 35.1%, 56.7%, 62.1%, 26.7%인데 한국은 12.6%에 그친다.
⑤ 공무원 보수, 민간기업의 85% 수준
⑥ 퇴직금 확대?…재정부담 완화 ‘도루묵’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다’는 주장은 자주 ‘그 대신 공무원은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한다’는 반론과 충돌한다. 재직 기간에 보수를 적게 주는 대신 퇴직한 뒤 연금으로 이를 보상해준다는 논리다.
안전행정부가 한국조사연구학회(조사학회)에 의뢰한 공무원 보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6월 기준 공무원(일반직, 경찰, 교원)의 보수는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 임금의 77.6% 수준이었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의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공무원은 77만6000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또 재직 기간과 나이, 학력 등 변수를 함께 고려한 ‘민간보수 접근율’이라는 개념으로 따지면, 공무원 보수가 민간기업의 84.5%에 이른다. 공무원의 평균 재직기간이 민간기업 노동자보다 길기 때문이다.
오성택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연금위원장은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계약직이나 정무직 공무원이 아닌 일반직만 따지면 보수 수준은 훨씬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사학회 실태조사를 보면 대졸 이상 일반직 공무원의 민간보수 접근율은 2010년(68.9%) 이후 2013년(69.8%)까지 계속 70% 선을 밑돌았다.
민간보수 접근율은 2004년 95.9%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뒤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안행부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1998~2003년)때 공무원 보수를 민간기업의 10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며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높였지만 다음 정부 때부터 인상률을 낮추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공무원 보수에 대한 불만이 잠재해 있는 상황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며 새누리당과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무원연금을 줄이겠다고 나서자 특히 하위직 공무원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강하게 터져나왔다.
당황한 정부는 공무원들의 사기진작책으로 퇴직수당(퇴직금 성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국연금학회의 공무원연금 개편안에도 ‘더 내고 덜 받는’ 내용과 함께 퇴직금 정상화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받는 퇴직수당은 재직기간에 따라 민간기업 노동자의 6.5~39% 수준이다.
2007년에는 2만2000명의 퇴직공무원들이 연금 외 퇴직수당이 일반근로자에 비해 적다며 법원에 소송을 낸 적도 있다. 퇴직금은 후불임금의 성격으로 사용자가 건드릴 수 없지만, 퇴직수당은 수당이어서 공무원이 비위 등을 저질렀을 때 깎을 수 있다는 것도 차이다.
공무원노조 쪽에서는 만약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 수준으로 개편된다면 퇴직수당을 민간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애초 정부의 재정부담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공무원연금 개편 추진의 명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퇴직수당이 늘면 그만큼 정부 재정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공무원연금을 줄여 재정부담을 더는 것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⑦ 퇴직자 연금3% 환수?…노조-정부 위헌논란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가 마련한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안을 보면 “재정분담 형평성을 고려, 연금수급자도 퇴직 시점에 따라 공무원 기여율 인상 정도 만큼 재정안정화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퇴직 공무원에게 수급액의 최대 3%를 다시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퇴직 공무원과 공무원 노동조합 등은 “위헌”이라며 반발한다.
연금학회 개편안이 퇴직한 수급자에게 수급액의 일부를 다시 내도록 한 것은 현재 재직중인 공무원의 매달 납입액이 현재 7%에서 2026년 10%로 3%포인트 오르는 것과 맞물린다.
재직 공무원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처럼 퇴직자도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은퇴 직전의 공무원은 이미 바뀐 제도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는 만큼, 기여금 비율은 해마다 0.075%포인트씩 낮아져 2055년에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에 대해 정용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8일 “일 시켜놓고 나중에 임금을 떼먹는 꼴”이라며 “재산권이라 할 수 있는 연금 수급권을 사후에 제한하는 조처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무원연금 주무 부처인 안전행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비춰 퇴직 공무원의 수급액 일부를 덜어내도 큰 문제는 없다는 태도다.
헌재는 2003년 9월 일부 퇴직 공무원이 은퇴 이후 소득이 발생했을 때 연금액을 최대 절반까지 깎을 수 있도록 한 공무원연금법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공무원연금 수급권도 국가의 재정이나 기금 상황 등에 맞게 축소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다만 당시 헌재 결정에는 “연금 수급권자에게 임금 등 소득이 퇴직 후에 새로 생겼다면”이라는 전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