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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엇을 댓글 0건 조회 1,003회 작성일 15-02-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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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눈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의 차이와 역량의 차이가 있어서 감정의 변화나 행동의 변화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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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무리 유한의 존재라 할지라도 그 한계 또한 넓고 깊어서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이성과 지성의 세계를 살펴보는 역량의 차이가 달라서 어떠한 문제를 놓고도 깊이 보고 폭 넓게 보아 깊고 폭 넓게 다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게 보거나 폭 좁은 눈으로 살펴보고 결론을 가볍게 처리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닌 눈의 한계도 어떠한 외형적 사물의 형태나 내면의 정신적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의 한계가 달라서 사람마다 표출되는 느낌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생을 엮어 가면서 그 보이는 것으로도 맛을 느낀다. 그런데 보는 종류가 하도 많아서 진정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헛된 것을 보기도 하고 잘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들어보고 만져 보고 생각해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고 도무지 보이지 않아 깜깜한 가운데서도 환히 내다보고 마음의 결정을 다짐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이는 보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보는 자의 올바른 정신 사상과 잘 다듬어진 그 마음의 생각에서 잘 보고 깊이보는 바른 결과가 비롯되기에 바로 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정신과 사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볼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마셔 보고 느껴 보고 체험해 보아도 알 수없는 것이 많은 것은 사람마다 보는 종류가 많고 보이는 종류가 많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바라보는 눈의 기능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인식에 의한 서툰 눈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육안으로 보는 것과 지 안으로 보는 것과 영안으로 보는 것이 달라서 스스로 보고 설명하는 것도 각각 다른 것이다. 죽은 사람을 죽었다라고 표현하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잔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다.

 

오염된 세상에서 깡 마른 가슴이 오염으로 쉽게 젖어 버리는 현실에서 살아 있는 푸른 가슴으로 가슴과 가슴이 이어지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면 이제 우리는 정제된 가슴에다 사랑의 눈을 달아야 할 때이다.

 

온유와 겸손이 자리한 깨끗한 가슴과 가슴이 오가며 주고받는 뜨거운 사랑의 눈으로 만물 속을 들여다 보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는 넓이와 깊이를 간직한 눈으로 현실세계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하늘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구별하여 볼수 있는 폭넓은 눈을 가지고 올바른 정신 사상에 의한 최대한의 눈의 기능을 발휘하여 현실 문제에 대처 하고 볼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지혜자의 눈을 가지고 진정 삶의 진가를 맛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